필리핀 여성들, 봉명동에서 공동체 이루며 생활
헬렌의 마더일기…“한 때는 아이 10명 돌보기도”

100명중 3명, 외국인들 한국살이
필리핀 공동체

헬렌 발고스(56)씨의 하루 일정은 빽빽하다. 그는 오전과 오후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을 챙긴다. 아침밥을 챙겨서 오전 타임에 유치원을 보낸 후 헬렌 씨는 3곳의 영어유치원과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 헬렌의 애칭은 마더다. 20여명의 필리핀 사람들은 봉명동 주택가에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마더를 찾는다. /사진=육성준 기자

퇴근 시간이 되면 그는 다시 아이들을 유치원에서 데려와 저녁밥을 먹이고, 밤늦게 오는 필리핀 엄마들에게 안전하게 아이들을 건넨다. 필리핀 엄마들은 주로 2교대 일을 하기 때문에 오전과 오후 모두 아이들을 챙겨야 한다.

“한 때는 10명 정도 아이를 돌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필리핀 여성들은 그를 ‘마더’라고 부른다. 힘들 때마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마다 그녀들을 살뜰하게 챙기기 때문이다. 헬렌과 필리핀 가족들은 봉명동 주택가에 모여 산다. 헬렌이 제일 먼저 이사 왔고, 이후 하나둘 씩 모였다. 2010년 이른바 ‘헬렌하우스’가 생겼고, 헬렌은 통역을 하며 만났던 이주여성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방을 내주었다. 헬렌의 집에 잠시 쉬다가 다시 일자리를 찾으면 바로 옆집에 방을 구했다. 지금은 20여명의 필리핀 사람들이 헬렌의 집 근처에 모여 살고 있다.

매주 주말이면 음식을 나누는 파티를 열고, 생일이면 어떻게 축하해 줄지 일주일 전부터 아이디어를 모른다. 한 때 상조회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좋은 일, 기쁜 일, 슬픈 일이 생길 때 내 일처럼 서로의 마음을 나눈다. 필리핀 사람들은 파티를 즐긴다. 필리핀이 지형적으로 자연재해를 많이 입어서 이러한 공동체 문화가 끈끈하다고.

‘헬렌하우스’에 모인 사람들

헬렌의 집 근처에 살고 있는 필리핀 여성들은 대부분 남편과 이혼했거나, 사별한 이들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사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특히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바쁜 엄마들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게 바로 헬렌이다. “남한테 무언가 도움을 줬을 때 기쁨을 느껴요. 시간이 부족해서 한국에 온지 꽤 됐지만 한국말을 잘 못해요.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그렇다고 헬렌의 인생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필리핀에서는 변호사로 일했던 삼촌의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했다. 필리핀에서 결혼해 아이 넷을 둔 그는 지금은 한국에서 막내딸과 함께 살고 있다.

2002년 친구의 소개를 받아 한국남자와 결혼해 충북 음성에 온 그는 2007년 이혼했고, 그 후에 만난 미국 남편과는 사별의 아픔을 겪었다. “신앙을 통해 많은 것을 극복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 겪어내야 했던 일들이죠. 한국에서의 국제결혼 문제가 정말 많아요. 임금을 제 때 받지 못해 억울해하는 노동자들도 많고요.”

헬렌은 필리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무료로 통역을 해준다. 그는 한 때 이주민노동인권센터에서 1년 정도 간사로 일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연신 전화벨이 울린다. ‘마더’를 찾는 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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