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동서고금의 ‘해법’
상태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동서고금의 ‘해법’
  • 충북인뉴스
  • 승인 2015.04.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2신 ‘생각이 다른 당신에게’ … 켄 윌버의 <무경계>
▲ 연규상 (주)열린기획 대표

책·책·책/ 연규상 (주)열린기획 대표

“당신은 누구입니까?”
누군가 대뜸 이렇게 묻는다면 무척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니 큰스님쯤 되는 분이 “니 뭣꼬?” 묻는다면 식은땀깨나 흘려야겠지요. “세상에 나 아님이 없는데, 따로 내가 있다고 할 게 있겠습니까?”하면서 슬쩍 경지를 드러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앎’과 ‘됨’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글과 삶, 생각과 행동, 이념과 실제 사이가 그렇듯이요.

그날 술에 취한 당신과 나 사이에도 건널 수 없는 틈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세월호를 인양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열거하며 정부의 ‘퍼주기’를 성토하더니 유족들 보상도 ‘세금폭탄’이라고 몰아붙였지요. 돌이켜보니 이렇게 부딪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대선 결과나 천안함 사건은 물론이고 홍준표 경남지사가 무상급식을 폐지할 때도 그랬지요. 사사건건 생각이 다르다보니, 어쩐지 당신은 나와 딸국질 소리마저 다를 것 같더군요. 정치 성향에 따른 해묵은 논쟁을 벌인 것에 불과한데, 나는 왜 당신에게 그토록 큰 거부감을 느꼈던 걸까요?

▲ 무경계 켄 윌버 지음, 김철수 옮김, 정신세계사 펴냄.

경계가 그어지는 하나의 예를 보겠습니다. 아담이 처음 한 일은 모든 동식물에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이름 짓기’는 자연계를 인간의 손아귀에 넣기 위한 밑작업이었습니다. ‘지식의 나무’가 그 정점이었습니다. 마침내 옳고 그름 같은 미묘한 문제마저 둘로 나뉘자 세계는 산산조각이 납니다. 고통과 쾌락, 삶과 죽음, 신과 악마, 남과 여, 사랑과 미움, 좋음과 싫음, 아름다움과 추함, 나와 너 등 대극 전체가 인류를 급습합니다. 이제 모든 경계는 전선(戰線)이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대극 중 어느 하나를 근절시켜 다른 하나를 세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악은 전멸되어야 했고, 죽음은 극복되어야 했습니다. 고통, 악, 죽음, 고뇌, 질병만 모아 놓은 지옥이 생기고 쾌락, 선, 영생, 기쁨, 건강만 모아 놓은 천국이 개설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고통 없는 쾌락’, ‘죽음 없는 생명’ 같은 게 존재할까요? 동양의 전승 지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페르소나에서 합일의식(不二)으로

선불교는 모든 대극의 경계란 허상에 불과하다고 일갈합니다. 부처는 이를 ‘상(相)’이라 하여 철저하게 부정합니다. “모든 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보리라”고 하고, 덧붙여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이름이 반야바라밀”일 뿐이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부처는 49년간 설법을 해놓고서도, 한 글자도 말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뗍니다. 부처라는 ‘이름’에 홀리지 마라, 불경이라는 ‘개념’에 갇히지 마라는 가르침입니다.

노자도 시작과 끝, 있음과 없음, 안과 밖 따위는 하나의 현상에 붙인 두 개의 이름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세계는 짝이 되는 두 범주들이 서로 겹쳐서 이루어져 있고, 이 원리가 바로 ‘도(道)’인데, 뭐라 부르기 마땅치 않아 억지로 ‘도’라고 이름 붙였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서양은 이름을 숭배하고, 동양은 이름을 경계하며 궁극의 요체에 접근했습니다.

경계를 만들어내는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정통 심리학은 주체를 바로 세워야 성숙한 인격이 된다고 하는 반면, 선지식은 자기를 없애라고 가르칩니다. 서로 다른 진리의 이름 아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펼치는 종교도 있습니다.

스스로 ‘나’를 느낄 때마다 우리는 예외 없이 마음속에 하나의 경계를 긋습니다. 그 경계 안쪽에 있는 것이 ‘나’이고 그 경계 밖에 있는 것이 ‘나 아닌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물음은 ‘나는 어디에 경계를 그었는가?’라는 뜻입니다. 경계는 전선이므로 그곳에서는 언제나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날 당신도 대목마다 걸고넘어지는 나에게 ‘벽’을 느꼈겠지요? 여기 책 한 권이 있어요. 겉보기엔 무슨 초월과 관조로 넘실대는 정신세계를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책은 아니에요. 저자인 켄 윌버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동서고금의 방법론을 자신이 구축한 독특한 ‘의식의 스펙트럼’ 속에 정교하게 배치함으로써 ‘나는 누구인가?’라는 유서 깊은 물음에 쉽고, 명쾌하게 대답하더군요. 특히 두 번째 장인 ‘그것의 절반’이 좋아요. 화 푸시고 당신도 이 책이나 한번 읽어봐요. 혹시 알아요? 분노해야 미워하지 않게 되고, 기억해야 외면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지. 괜찮아요. 책 한 권 읽는다고 안 죽어요, 그 성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