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사건 다룬 영화, 학생들의 일상을 통해 재구성

▲ 정유진 씨네오딧세이 대표

씨네 오독?오독!/ 정유진 씨네오딧세이 대표

영화의 화면비율은 비율로써 말하고자 하는 방식이 영화의 주제의식과 일치 할 때에 비로소 빛을 발한다. 과거의 티비 브라운관이 4:3 방식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티비용 방식의 화면 구성으로 촬영 되었던 영화에는 레터박스를 이용해 억지로 화면 비율을 맞추는 경우도 있었지만 영화 엘리펀트의 경우는 그와 사뭇 다르다.

엘리펀트는 씨네마스코프 비율이 아닌 1.33:1 이라는 폴라로이드 비율을 따른다. 당시 제작사 이던 HBO사가 영화 제작 당시 개봉될 화면비율을 놓고 감독과 상의를 할 때에 구스반 산트는 되도록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 비율을 택하여 촬영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구스반산트는 한 번에 한 장,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한순간의 기록이 되는 폴라로이드의 비율을 택했다. 이 비율을 택함으로서 극영화인 엘리펀트는 저널리스틱한 순간을 함께 시사하게 되는 것이다.

폴라로이드 비율로 촬영

▲ 엘리펀트 Elephant, 2003 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알렉스 프로스트, 에릭 두런

이 영화는 1999년 4월, 911 이전에 미국을 공황상태에 빠지게 했던 콜럼바인의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17세와 18세인 알렉스와 에릭은 집단 따돌림을 받는 소위 왕따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인터넷으로 총을 주문해 학교로 들어가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한다. 엘리펀트는 사건의 행적을 따르기보다 학생들의 일상을 중심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영화는 딱히 스토리랄 것도 없이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한 학생들 의 일상을 핸드핼드 카메라를 이용해 조용히 응시 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총기난사 씬 이외엔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반복과 이어지는 아이들의 하루간의 동선만 존재 할뿐이다.

화창한 가을 어느 날 미국의 와트 고등학교,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가 차를 난폭하게 몰자 자신이 직접 운전해 학교에 가는 존을 시작으로, 카메라를 들고 학교를 누비며 친구들의 사진을 찍는 일라이와 운동을 마치고 학교로 들어가 여자친구 캐리를 만나는 네이슨, 운동장을 돌다가 한동안 느리게 하늘을 바라보고는 도서관으로 돌아가 책을 정리하는 사서 미셸과 성정체성에 관한 시덥지 않은 토론에 참여하는 아카디아, 치어리더인 브리타와 조던, 살을 빼기위해 먹은 점심을 화장실에 가서 바로 토해 버리는 니콜과 친구들, 왕따인 알렉스와 그의 집에 찾아온 에릭 알렉스는 피아노를 치고 에릭은 총쏘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한다.

알렉스와 에릭이 히틀러를 다룬 TV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때 총과 수류탄 등이 택배로 배달된다. 총의 성능을 시험해본 알렉스와 에릭은 곧장 학교로 가 선생과 학생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다.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

성장영화의 외피를 입은 구스반산트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모두 그들의 성장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술이 취한 채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려는 존의 아버지처럼 방해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아이들에게 그들은 결코 믿을 수 없는 존재임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영화의 제목은 왜 엘리펀트일까? 코끼리 하면 자연적으로 떠오는 인도의 우화가 있다.‘맹인모상’(盲人摸象) 우화 즉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그것이다. 맹인 네 명이 거대한 코끼리의 부분들을 손으로 만져 보고는 각기 다른 코끼리의 상을 코끼리의 모습이라고 인식한 데서 비롯된 우화이다.

구스반산트는 이것에서 기인해 각각의 학생들의 일상을 통해 사건이 일어난 그날을 구성한다.

서양에는 코끼리에 관한 다른 우화도 있다 집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는 서양의 속담에서는 새끼였을 때는 집 안과 밖을 오고갈 수 있던 코끼리가 집안에 들어와 어느 틈에 자라나 집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데도 그럴 수 없게 되어 버리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럴 수도 없는 상태 하여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누구도 아는 척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이야기 한다고 한다.

결국 누구도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이 이야기의 구성과 (예민한 주제의 실화를 다루는 연출자의 방식- 같은 사건을 다룬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은 완전히 다른 방식의 구성을 보여 주고 있다)이미 가지고 있는 각자들의 편견으로 보는 이 사건의 전말을 어른의 눈으로 심판하고 단죄하기에 앞서 조용한 나열과 시간의 반복으로 구스반산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구스 반산트는 그의 영화 엘리펀트를 통해 이미 예견된 아니 선포된 죽음 앞에 그저 조용히 사소한 그들의 일상을 나열 하는 방식으로 관객의 발 앞에 스스로 질문을 확인할 수 있도록 81분 짜리 폴라로이드 사진과 서투르게 연주 되며 시간을 느리게 재현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꺼내 놓았다.

1999년 4월의 콜럼바인 에서 희생된 익명의 모두와 남겨진 자들에게. 이 끔직하고 고통스런 사건 앞에 우리는 이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혹은 취할 것인가? 하는 질문 그 자체가 아니였을까 생각해 본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대한민국의 지난 1년간 오늘이 가지 않고 있을 우리 모두에게 아직 우리는, 아직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을 수 도 없고 느리고 서투르게 연주되는 소나타도 바칠 수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봄이 오고 꽃이 만발하고, 하늘은 맑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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