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옌과 충북, 문화로 이어진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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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옌과 충북, 문화로 이어진 10년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5.04.1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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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40년 기념일 집체극에 충북공연단 축하공연
참전과 학살의 악연…문화예술로 해원(解寃)하다

③충북공연단, 해방기념일 무대에 서다

▲ 베트남 전쟁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한 집체극.

푸옌성(省)의 성도 뚜이호아는 3월 중순부터 달뜨기 시작한다. 베트남 사람들이 ‘호 아저씨(박호, 伯胡)’라고 부르는 호치민의 초상은 도심 곳곳에서 걸개로 펄럭인다. 영웅은 호치민만이 아니다. 정규군과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전사들, 땅굴을 파고, 군량미를 날랐던 베트남의 민중들을 묘사한 걸개도 함께 나부낀다. 심지어는 고전 속의 인물이 되어버린 마르크스와 옛 소비에트연방 국가들에서 수모를 겪는 레닌의 초상까지도….

우리가 ‘월남패망’이라고 배웠던 베트남전의 종전은 지금 베트남 사람들에게 승전의 날이고 해방기념일이다. 그때 패망한 것은 미국을 등에 업은 남베트남(베트남공화국)이다. 역설적이게도 한자발음이 월남(越南)인 베트남은 건재하다. 다만 미국이 물러갔을 뿐이다.

베트남의 공식 해방기념일은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현 호치민시)의 대통령궁에 북베트남 탱크여단이 진입한 4월30일이다. 그러나 푸옌성의 해방기념일은 4월1일이다. 인도차이나반도의 동안(東岸)을 따라 길게 자리를 잡은 베트남의 성(省)들을 점령해가며 해방전선기를 꽂은 날을 각각의 기념일로 삼기 때문이다. 그래서 4월1일은 술렁임의 절정이다. 더욱이 올해는 종전 40년이 되는 해다.

날이 저물면서 오토바이의 물결이 거리에 넘치더니 대하를 이뤄 4.1광장을 향해 흘러들었다. 수만의 군중이 운집했다. 4.1광장에 설치한 무대는 족히 30여m가 넘어보였다. 1시간이 넘도록 축사가 이어진 뒤 웅장한 합창과 군무로 공연이 시작됐다. 공연의 주체는 성 소속의 사오비엔술단이다. 사오는 별, 비엔은 바다, 사오비엔은 바다의 별, 즉 불가사리를 의미한단다.

집체극(集體劇)이었다. 1990년을 전후해 대학생활을 한 사람들에게는 낯설면서도 익숙할 수 있는 장면들…. 배우들은 고지전을 재현하듯 사다리를 오르고, 땅굴을 묘사한 듯한 비닐조형물 속으로 기었다. 네이팜탄 융단폭격이 휩쓸고 지나가는 장면에서는 애달픈 단조가락이 흘렀다. 원로가수들이 전통현악기를 연주하며 민요를 불렀고 여성무용수들은 쓰러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다. 모든 민중이 싸움에 합류했고 마침내 해방전선기가 나부꼈다.

기승전결에 충실한 극의 전개는 승전 이후의 살기 좋은 베트남으로 이어졌다. 들에서 일하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풍요로운 삶이 군무로 펼쳐졌다. 베트남과 닮은 듯 다르게 흘러가는 한국근대사에서 1980년대 ‘건전가요’라고 명명했던 노래, ‘아 대한민국’이 떠올랐다. ‘하늘에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 마다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그때 거리에는 ‘불건전가요’가 울려퍼졌었다.

▲ 불꽃놀이를 지켜보며 소회에 젖는 노병들.

조애란 독창, 울림 큰북공연

줄거리를 갖고 이어지던 극이 대단원으로 치닫던 즈음 갑자기 ‘한국 충북’이라는 귀에 익은 우리말이 광장에 울려 퍼진다. 집체극의 말미에 충북공연단의 공연을 15분 정도 삽입한 것이다.

한국전통음악가수로 소개를 받은 조애란씨가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 ‘뎀 뚜이호아(뚜이호아의 밤)’을 베트남어로 열창했다. 노래 ‘뎀 뚜이호아’의 유래는 이렇다. 이곳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불교유적 얀탑에 모여 시낭송회를 여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2013년 행사에 충북민예총이 참가했고 그때 얻어간 자료 중에 있던 시 ‘뎀 뚜이호아’에 청주지역 작곡가 김강곤씨가 곡을 붙였다는 것이다. 따지자면 베트남어로 된 한국노래다.

타악 퍼포먼스그룹인 ‘놀이마당 울림’의 큰북공연이 이어졌다. 태평소를 부는 경진수씨의 색소폰 연주와 어우러진 퓨전형식이었다. 열두 발 상모가 돌고 하성호씨의 버나놀이로 이어졌다. 곰방대 하나로 버나(나무와 가죽으로 만든 쳇바퀴)를 돌리다가 곰방대를 세 개까지 늘리고, 하늘로 솟구쳤던 버나를 다시 곰방대로 받아낼 때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열렬한 호응이었다.

조애란씨는 “하나의 줄거리로 이어지는 집체극 중간에 우리 공연을 집어넣은 것은 우리가 요청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다. 더욱이 이렇게 큰 무대에서 독창까지 한 것은 개인적으로 영광스럽고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씨는 또 “한국이 더 가깝고 친근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고 덧붙였다.

박종관 충북민예총 이사장은 “한국은 베트남전을 일으킨 나라는 아니지만 유일하게 전투병을 파병했던 국가다. 특히 이곳 푸옌은 한국군 부대가 주둔했던 곳이고 수많은 양민이 학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해방기념일 집체극에 우리 공연이 삽입된 것은 지난 10년 동안의 교류를 통해 쌓인 깊은 신뢰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해방기념일 무대에 충북공연단이 함께했다.

놀이마당 울림이 주축이 된 충북공연단은 푸옌 도착 이틀째인 3월30일 저녁 푸옌박물관 광장에서 한국-베트남 공동사진전을 개막하고 70여분에 걸쳐 단독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푸옌과 충북은 친구였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호치민까지 5시간, 국내선을 타고 나짱(영어발음 나트랑)공항까지 1시간, 버스로 5시간을 달려서온 푸옌이다. 연결하는 시간을 빼고도 11시간이 걸렸다. 그 지루하고 힘겨운 시간 내내 인연에 대해 생각했었다. 표해록(漂海錄)을 남기지 못했지만 바다를 표류하다 베트남 고대국가인 ‘응오꾸옌’에 이르렀을지도 모르는 어느 고대 한국인부터 우리가 온 거리만큼을 짚어서 한국으로 오는 스엉, 타오, 찌이 같은 베트남 신부들까지….

공연이 끝난 뒤 무대 뒤에서 폭죽이 터지면서 불꽃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불꽃놀이는 30분 가까이 진행됐다. 우리 좌석 뒤에 앉아있는 노병들의 표정에 자꾸 눈길이 갔다. 쉴 새 없이 터지는 폭죽소리에서 그 옛날 포성의 위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사라져가는 노병들답게 감회에 젖는 것처럼도 보였다.

*충북민예총 베트남 문화예술교류 동반취재 연속기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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