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균 취재1팀 기자

▲ 김남균 취재1팀 기자

기억도 어렴풋하다. 몇 년 전인지 기억도 정확하지 않아 최소 10년은 지난 것 같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관행에 맞서 꽤 많은 노동자들이 연이어 죽었다. 바로 그때 나를 포함한 일 무리의 노동자들은 상당공원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했다.

가을 이었다. 늦가을 햇살도 좋고 상당공원 아름드리 은행나무 빛은 더더욱 노란빛을 더해 황금빛이었다. 죽음과 대비된 거대한 황금 빛. 무섭도록 잔인해 보였다. 나는 그 해 가을 뒤로 은행나무 단풍길은 피해서 간다. 나약한 같은 인간으로서 죽음 앞에 대비된 찬란함을 볼 용기는 이미 없어졌다.

그런데 다시 상당공원이 노랗게 물들어 간다. 딱 1년 전인 4월 16일 뒤로 사라졌던 노란 리본 대신 노란 현수막이 상당공원을 물들여 간다.

4월 16일. 이날은 과연 무슨 날인가. 두말이 필요 없겠다. 오늘 아침 소고기 무국을 끓여 밥을 먹이고 학교에 보낸 자식 이야기조차 누군가에게 사치스러워 말 못하겠다.

누군가의 가슴에 억장을 들이민다. 어묵 하나로도 들이 밀고 말하지도 않았던 보상금으로 들이민다. 아예 생살을 후벼 판다. 우리 사회의 절반은 누군가의 아빠이거나 누군가의 엄마다. 부모로서 다 한번 쯤 겪었을 텐데 엄마 아빠조차 절반으로 갈린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대한민국은 ‘안전’이 화두였다. 하지만 그 조차도 잠깐. 거대한 도그마는 ‘안전’보다 ‘경제’를 들고 나왔다. 유가족과 아직 유가족이 되지 못해 슬픈 아홉 가족에 대해 경제를 살리자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구도는 바뀌었다. 안전보다는 경제가 우선했다. 지난 해 6월 무릎을 꿇거나 절을 하며 한 번 살려 달라던 빨간 옷을 입은 사람과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의 위치도 바뀌었다.

그런데 과연 이 문제가 노란 옷 리본 사람들과 빨간 옷 입은 사람들 만의 문제일까.

교육 현장에 대해 취재를 하면 할수록 상당공원 황금빛 신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연과 학연을 바탕으로 거미줄처럼 촘촘히 네트워크를 형성해 아이들의 도시락부터 안전까지 리베이트로 퉁친 어른들의 존재를 보게 됐다.

필요와 상관없는데도 임상 검사도 안 거친 의료기기 같은 제품들이 학교로 들어왔다. 야영이나 수련활동, 수학 여행 같은 것에 알선자들이 개입돼 있었다.

4월 16일. 맞다.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수학 여행을 떠났다. 만약 그 아이들의 여행에도 누군가 중간 개입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부당한 어른들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4월 16일은 의문투성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행적이 궁금하다. 왜 세월호 선장과 직원은 탈출을 막으며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했는지 궁금하다. 지그재그 행적도 궁금하고 국정원과 세월호 관계도 궁금하다.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 세월호의 진실을 국가가 규명해줘야 한다. 그 첫 단계는 유족이 원하는 대로 인양이다. 진상규명위원회의 원활한 활동보장이다. 이것은 출발점에 불과하다. 피맺힌 한을 풀어줘야 한다. 4월 16일 가슴에 응어리진 사람들이 한이 맺혀 또 다른 4월 16일을 상징하는 사람이 될까봐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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