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동 목사 (청주도시산업선교원)

   
 나는 박정희 시절부터 민중운동을 하며 노무현 정권의 맛을 보고 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박정권만 무너지면 민주주의가 되는 줄 알았다. 아무리 폭압정치를 해도 긴장감에서 희망을 바라보며 일을 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노태우 정권 때까지만 해도 우리집에는 형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때는 24시간 감시를 했고, 어느 때는 3일전부터 정보 형사들이 잠까지 자며 감시를 했다. 서울을 가든 부산을 가든 형사들이 따라 붙었고, 따라 오지 못하면 그 지역 형사들에게 인계를 했다.

 물론 감옥살이도 했다. 나만이 아니라 산업선교 실무자들이 전국에서 다 탄압을 받았다. 이 탄압으로 대구, 구미, 대전, 서울 등지에서 산업 선교를 그만 둔 사람들이 많다.

 청주산업선교회도 중앙 정부가 선교위원들에 압력을 가하여 월급을 중단하고, 위원들을 해체하는 등의 엄청난 박해를 가해왔다. 내가 조금만 흔들렸어도 민중 선교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회를 떠나 혼자서 산업 선교를 하며 교파 없이 오늘날까지 진행해 오면서 박정희 정권, 전두환정권, 노태우정권, 김영삼, 김대중 정권을 거쳐 노무현 정권까지 맛을 보고 있다.

 가장 긴장시킨 폭압 정권은 박정희 전두환정권 이고 노태우정권은 같은 군인이라도 군사정권중에서는 부드러운 정권이었다. 김영삼정권은 문민정부라고 하지만 노태우와 손잡고 정권을 창출했기에 합법 정권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물론 김대중 정권 역시 군사정권의 한 축인 김종필과 합작한 정권이기에 역시 정통성 있는 정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번도 역대 정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데 투표하지 못한 셈이다.

 이후 민중운동은 잡혀가는 탄압은 없었지만 잡혀갈 때보다 정신적 고민은 심화되었다. 민주 인사들이 합법적 믽부 정부라 고하며 권력의 말을 타고 야단법석인 사회속에서 심기가 편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같은 심기를 가지고 고민하는 자들도 나 하나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인양 박수치며 따라가는데 그것이 아니라며 비판적 입장에서 활동하는데는 아주 어려웠다.

 민중 문제는 민주주의 원칙이라는 미명하에 당사자간 해결에 맡겨져 민중들의 어려운 문제가 풀리지 않고, 민노총은 민노총대로 거리에서 극한 투쟁을 하고 있으나 만족할만한 성과는 없다.

 노동 현장의 아우성 소리는 도시빈민 속에서, 농민 속에서 더 고통스럽게 커지고 있다. IMF 때 김대중 정부는 금 모으기 등으로 경제난국을 이겨냈다고 환호성을 쳤지만 실제로 가난한 자들의 체감온도는 추위가 심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카드 빚에 찌든 가난한 민중들의 고통은 군사독재 정권보다 심각하며, 열악한 근로조건과 환경에 의해 전락된 것은 속일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들어서면서 이제는 민중이 한숨 돌리는 정권이 온줄 알았다. 그런데 대통령의 무분별한 발언을 위시하여 탄핵문제, 헌법소원, 파병문제, 신행정수도 등으로 민중들은 더욱 혼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민주라는 미명하에 골탕 먹는 것은 민중들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병반대 집회에서 노무현 규탄과 그 규탄을 원치않는 파들의 갈등으로 여전히 우왕 좌왕하고 있음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 민중들은 눈을 바로 떠야 한다. 소금이 제맛을 가지고 있을 때 소금이 필요한 것이지 맛을 잃으면 버리라고 했다. 파병은 결사적으로 막아야 하며 파병에 가담하는 노무현 정권은 제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본다. 미국에서도 상원의원들이 만장일치로 이라크 전쟁은 잘못된 것이라고 판결을 내렸으면 이제 결론은 난 것이다. 파병은 즉각 취소되어야 한다.

 나의 긴 민중운동을 되돌아보며 소감을 피력하면서 노무현 정권의 우왕좌왕과 그에 따른 민중들의 고통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어 몇자 적어봤다.



*정진동 목사님(73)은 가난하고 힘없는 소시민들의 해결사로 평생을 민중운동에 전념해온 청주 지역의 대표적인 재야운동가입니다. 72년 청주도시산업선교회를 열어 힘없는 자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해온 지역의 양심으로 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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