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진 교수 “다른 저의 있어 주자본으로 오인한다면 학계 분탕질하는 행위”
보조사상연구원 월례학술대회에서 참석자들 격론 벌였으나 목판본 주장 강해

▲ 삼성출판박물관 소장 증도가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과연 금속활자본 일까? 알 수 없다. 오히려 현재는 목판본이라는 주장이 우세해 향후 학계 움직임에 관심이 쏠려 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이하 증도가)는 당나라 현각이 중국 선종의 6조인 혜능을 직접 배알한 후 크게 깨달은 심정을 서술한 증도가에 남명천화상이 320편을 읊어붙인 책이다. 참선하는 수행자의 지침서 역할을 할 만큼 중요한 책이라고 한다. ‘증도가’는 현재 3개의 본이 전해지고 있다. 삼성출판박물관(보물 제758호), 공인박물관(보물 제758-2호), 개인 소장본 등이다. 
 

이 중 경남 양산의 공인박물관이 소유하고 있는 목판본에 대해 연구의뢰를 맡은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이 최근 금속활자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박 원장은 문화재청 산하기관인 문화재연구소에서 예능민속실장을 지내고 퇴직했다.

▲ 공인박물관 소장 증도가

공인박물관은 김찬호 대성암 주지가 운영하고 있다. 김 관장은 이미 지난 2012년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증도가’를 금속활자본으로 보물 지정을 신청했으나 문화재위원회는 조사끝에 목판본이라고 결론을 내고 목판본 보물로 지정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박 원장이 나섰다. 이는 최근 전국지 C일보가 보도하면서 논란에 불을 당겼다. 박 원장은 지난 21일 열린 보조사상연구원 월례학술대회에서 금속활자본 ‘증도가’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여기서 삼성출판박물관·개인 소장본은 목판본인데 공인박물관 소장본은 금속활자본이라고 주장했다.

▲ 개인소장 증도가

박 원장은 “공인박물관 소장본은 1239년 최이에 의해 간행된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본이다. 세 가지의 ‘증도가’를 놓고 비교해보면 이 책에는 책 테두리에 쇳물이 녹아내려 높이를 맞추지 못해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게 있다. 또 같은 면과 같은 글자에서도 농박의 차이가 심하다. 금속활자이므로 활자마다 높낮이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높낮이가 한쪽으로 기울어 먹이 골고루 묻지 않아 일부 획에 가필한 흔적도 있고, 쇠똥자국과 활자 제조과정에서 생긴 철편도 보인다”고 말했다.
 

“동일한 목판본으로 인쇄한 후쇄본”

하지만 이 날 조형진 강남대 교수는 강하게 반박했다. 조작 혹은 다른 저의가 있어 다른 판본을 주자본으로 오인한다면 학술계를 분탕질하는 나쁜 행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국가의 망신을 초래할 것이라고 흥분했다. 이 날 분위기도 목판본이라는 주장이 대세였다는 후문이다. 조 교수는 “고려시대 중앙정부 금속기술 수준이 책 테두리 금속편을 고르게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목판본의 경우 테두리 일부가 끊어진 것처럼 나타나는 현상은 파손에 의한 탈락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농담차이가 활자본의 특징중 하나이나 목활자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쇠똥자국과 철편이라고 주장한 부분은 묵즙이 인출과정에서 번진 게 아닌가 싶다. 금속활자는 주조과정에서 너덜이가 없을 수 없다. 단 너덜이의 묵색이 문자와 동일한데 박 원장이 쇠똥 또는 철편이라고 한 묵색은 문자부분과 농담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 3월 21일 열렸던 보조사상연구원의 월례학술대회

한편 황정하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실장은 증도가 3개의 본이 목판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책의 끝에 1239년 진양공 최이가 ‘이에 장인을 모집해서 금속활자본을 목판으로 다시 새겼다’는 발문이 있다. 3개의 본을 서지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1472년 조선 성종 3년 이후에 동일한 목판으로 인쇄한 후쇄본(後刷本)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황 실장은 책 테두리 떨어진 흠집이 모두 똑같고, 각 장마다 목판새긴 사람 이름이 새겨져 있고, 글자의 흠집이나 칼자국 등이 똑같이 나타나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또 공인박물관 소장본이 전체적으로 흐린 것은 후쇄본으로 목판이 낡아서 나타나는 현상이고, 일부 글자가 겹쳐서 인쇄된 것은 한지가 밀린 것이며, 삼성출판박물관본과 개인 소장본은 왕실에서 간행해 한지가 좋은 반면 공인박물관 소장본은 한지의 질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금속활자본 ‘증도가’를 찍은 증도가字라며 활자를 들고 나와 학계에 파란을 일으킨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도 공인박물관 소장본은 목판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직지박물관이 아닌 이유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본 언제든 출현 가능···활자에 관한 연구 인프라 조성해야

 

직지를 수식할 때 쓰는 말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이라는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금속활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뜻이지 세계의 모든 금속활자본 중 가장 오래됐다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본이 나올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청주 고인쇄박물관을 직지박물관 혹은 일부 주장대로 흥덕사지박물관이라고 하지 않고 고인쇄박물관이라고 포괄적인 이름을 붙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 1985년 청주 흥덕사지에서 금구가 출토된 뒤 1990년 흥덕사지관리사무소가 설치됐다가 1992년에 고인쇄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고인쇄박물관은 올해로 개관 23년째를 맞이한다.

고인쇄박물관이라는 이름은 천혜봉 전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붙였다. 천 교수는 한국서지학계의 권위자로 한국서지학회장, 한국도서관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직지가 금속활자본인 이유, 금속활자본의 활자 주조방법, 금속활자본의 서지학적 특징 등에 대해 처음으로 정리한 학자이다. 천 교수는 평소 북한의 개성이 금속활자 발상지이지 청주는 중흥지라고 표현해야 된다고 주장했다는 후문이다. 기록상으로 직지보다 앞선 증도가와 상정예문이 개성에서 인쇄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주는 이 모든 것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고인쇄박물관으로 붙였다는 것.지난 2010년 증도가字의 진위 여부가 청주에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책 ‘증도가’가 금속활자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는 목판본이라는 주장이 더 강하지만 진위여부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청주시가 활자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한 지역인사는 “아직까지는 직지가 금속활자 발명국이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자료이다. 하지만 이 보다 앞선 것들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양자로 갔던 장남이 족보들고 찾아와 자신이 큰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청주시는 충격에 빠질 것이다. 이런 점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자주 역설한다. 청주시가 하루빨리 금속활자 발명국으로써의 위상에 걸맞는 자료를 축적하고 연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자료 및 도서구입비, 연구비가 부족해 허덕이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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