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장무 글·이은정 그림

얼음이 하도 단단하여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못 타고
썰매를 탔다.
얼음장 위에 모닥불을 피워도
녹지 않는 겨울 강.
밤이면 어둔 하늘에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강 건너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 멀리 들려왔다.
우리 독립군은
이런 밤에
국경을 넘는다 했다.
때로 가슴을 가르는
섬뜩한 파괴음은
긴장을 못 이긴 강심 갈라지는 소리.
이런 밤에
나운규는 ‘아리랑’을 썼고
털모자 눌러 쓴 독립군은
수많은 일본군과 싸웠다.

‘두만강(頭滿江)’ 김규동. ‘현대문학’ (1985)

몇 해 전, 중국 쪽 강변을 따라 회령천 건너편에서 출발해서 도문, 훈춘을 지나 강 하구인 삼합에 이르기까지, 두만강을 죽 둘러볼 기회가 있었지요. 그때, 여울져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서 ‘두만강 너 우리 강아, 두만강 너 우리 강아’ 하고 몇 번이고 불러본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 한강이 있고, 평양엔 대동강이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가슴에 안길 듯, 손에 잡힐 듯 국경을 그으면서 흐르는 두만강이야말로 정녕 우리 민족의 강이라 생각했습니다. 망막한 한 시절, 나라 잃은 백성들이 남부여대하고 북간도로 혹은 아라사의 땅으로 유랑의 쓰라린 삶을 향해 눈물로 건너던 마지막 고국산천이 바로 ‘두만강 푸른 물’입니다. 그때 ‘얼음장 위에 모닥불을 피워도 녹지 않는’ 강을 건너 ‘털모자 쓴 독립군은 수많은 일본군과 싸웠’고 ‘나운규는 아리랑을 썼’지요. 결코 지금처럼 퇴색되거나 그 빛을 잃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우리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강입니다.

현실로 당면해있는 분단의 고통 속에서, 순결한 의지와 선량함으로 가슴 푸르른 선구자처럼, 언젠가는 온전한 나라를 이룩할 결의로 가득차서, 한 시대를 용서하듯, 반짝이며 흐르고 있는 ‘두만강 너 우리 강’은 그래서 명백한 민족의 강이지요.

날이 가고, 해가 가고, 또 해가 가듯이, 강물처럼 한 겨레의 삶이 천천히 끊임없이 그러나 결코 돌이키는 법 없이 흘러갑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을 ‘말 달리던 선구자’의 정신으로, 다시 하나 되는 민족의 영감과 구원을 향해, 그 뜨거운 사랑과 동경을 향해, 정정당당한 미래의 경이를 믿으며, 푸르고 푸른 강물은 흘러 흘러갑니다.
모든 기적은 사랑의 소산입니다.
남이여-
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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