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노 충주담당 차장

▲ 윤호노 충주담당 차장
‘내가 십년 동안 울면서 후회하고 다짐했는데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배우 김래원이 주연한 영화 ‘해바라기’에 나오는 대사다. 주인공 태식은 별다른 야욕 없이 새로 생긴 가족과 꿈을 바라보며 살아갈 뿐인데 근처에 살고 있는 악당들이 무자비하게 모든 것을 뭉개버린다. 이에 태식은 참다 참다 못해 일당백으로 몇 십 명은 족히 되는 악당을 죄다 때려눕히고 장렬히 전사한다. 이 과정에서 태식이 악당들에게 한 말이 해바라기의 명대사가 됐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서울 반포에 수제 맥주 전문점인 ‘데블스도어(Devil’s Door)’를 열었다. 수제 맥주집은 15~16년 전 청운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등)이 독일 등 유럽 맥주의 참맛을 한국 맥주 애호가들에게 선보이겠다며 시작한 사업이다. 이후 조선호텔 등이 수제 맥주집을 여는 등 너도나도 수제 맥주집을 차렸다. 여기에 이달 경기도 파주 신세계사이먼 프리미엄아웃렛에 30평 규모의 주류백화점 ‘와인앤모어’ 1호점을 연다. 3월에는 여주 프리미엄 아웃렛에 2호점도 열 예정이다.

정 부회장의 여동생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의 재벌가 ‘빵집’ 논란이 가라앉자마자 ‘술장사는 안한다’는 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경영철학과도 배치되는 주류사업에까지 열을 올리며 골목상권을 넘보고 있는 것이다.

수제 맥주집과 주류백화점에서 버는 돈은 정 부회장에겐 큰돈이 아니겠지만 와인바들에겐 생사가 걸린 돈이다. 이 일이 지속돼 중소상인들이 무너지면 그들은 아마도 신세계의 수제 맥주 전문점 이름인 ‘데블스도어’를 말 그대로 ‘악마의 문’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최근 충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충주지역 레미콘 시장에 국내 레미콘업계 2위인 대기업 삼표가 진출하기 때문이다. 삼표는 계열사가 위장 중소기업으로 적발돼 관급시장에서 퇴출당한 기업이다.

해당 중소레미콘업체들은 공공조달시장에 참여해 2년간 252억 원의 관급납품계약을 따냈다. 중소기업청은 대기업인 삼표가 위장 중소기업으로 공공입찰에 참여해 중소기업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삼표는 공공조달시장 분야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 소비 물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일반시장 진출에는 문제가 없어 충주지역 레미콘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급시장에서 퇴출된 삼표가 사급시장에 전념하면 지역 중소 레미콘업체의 타격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삼표는 그룹 내에서 레미콘의 주재료인 골재와 슬래그 파우더, 첨가제 등을 자체 조달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저가 공세로 나올 경우 영세업체가 버텨낼 재간이 없다.

충주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시·군들이 대형마트 진출로 골목상권이 붕괴되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대기업이 욕심을 부려 중소상인들의 영역까지 침범하면 지역 업체와 골목상권은 붕괴된다.

그들에게 커다란 목소리로 묻고 싶다. 꼭 그렇게 다 가져 가야만 속이 후련하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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