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라 닐 허스턴 『그들의 눈은 신을 보았다』

영화를 통해 문학 읽기28
윤정용 평론가

▲ 영화 「그들의 눈은 신을 보았다」 포스터.
예술가를 거칠게 분류하면 살아있을 때는 부와 명성을 누렸지만 사후에는 아무도 모르는 예술가가 있고, 살아있을 때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 불행했던 예술가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는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았지만 사후 후대 예술가들에 의해 조명된 예술가일 것이다. 조라 닐 허스턴은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한다.

허스턴은 앨라배마 주 노타설카에서 태어났고 세 살 때 침례교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최초의 흑인 자치 도시 플로리다 주 이튼빌로 이주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중에 이튼빌의 시장이 되었고 이튼빌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그녀의 작품들에 여러 가지 형태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사후 조명된 작가

허스턴이 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 도착했을 때는 ‘할렘 르네상스’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그녀는 1937년에 『그들의 눈은 신을 보았다』 와 1939년에 『모세, 산의 사람』을 출간했지만 평단으로부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동시대 흑인 남성 작가들은 허스턴이 흑인 방언을 사용함으로써 백인들의 취향에 부합해서 흑인 문화를 희화해했고 그녀의 작품이 정치적인 주제가 결여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들이 보기에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룬 『그들의 눈은 신을 보았다』 같은 작품은 할렘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에 부합되지 않았다. 허스턴은 말년에 투병 생활을 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다가 1960년 플로리다의 한 복지원에서 심장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몇 십 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졌던 허스턴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어나게 된 것은 1970년대, 8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여러 대학에 흑인 문화 강좌가 개설되고, 흑인 문학을 연구할 수 있는 학문적 분위기가 형성된 덕분이다. 그 노력의 결과물은 ‘조라 닐 허스턴 학회’의 설립이었다.

『그들의 눈은 신을 보았다』는 주인공인 사십대 초반의 흑인 여성 재니 크로포드가 자신의 삶의 여정을 친구 피비에게 회상하며 들려주는 자서전적인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소설의 첫 부분은 재니의 어린 시절과 첫 번째 결혼에 대한 이야기다. 재니의 할머니 내니는 노예로 살면서 강제로 주인의 아이를 임신하고 딸인 리피를 낳았다. 리피 역시 학교 교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재니를 임신한다.

리피는 고통을 못 이겨 재니를 남겨둔 채 가출한다. 내니는 리피에게 품었던 모든 희망을 재니에게 옮긴다. 재니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이웃집 소년 조니 테일러와 키스하는 것을 본 내니는 재니가 남자에게 몸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노새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농장과 집을 소유한 로건 킬릭스에게 시집보내기로 한다. 재니가 이를 거부하자 내니는 재니에게 “흑인 남자는 짐을 집어 들긴 하지만 그걸 짊어지고 나르지는 않아. 그냥 자기 여자 식구들한테 짐을 넘긴단다. 내가 아는 한 흑인 여자들이 이 세상의 노새”라고 말한다.

결국 재니는 할머니의 말에 따라 킬릭스와 결혼하지만, 그가 그녀를 존중하지 않자 그를 떠나 말 잘하는 조디 스탁스를 따라 이튼빌로 간다. 이튼빌에 도착한 스탁스는 근처의 땅을 사들이고 잡화점을 운영하면서 이튼빌의 시장이 된다.

무심한 어조로 불평등 비판

▲ 조라 닐 허스턴
스탁스는 재니의 노동력을 착취하지는 않지만 그녀를 남에게 과시하기위한 일종의 ‘트로피 아내’로 간주한다. 그는 자신의 막강한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재니의 완벽한 이미지를 원할 뿐, 재니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게 한다. 재니는 처음에는 순종적으로 살지만 결국에는 그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권력자로서의 그의 모습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환상을 깨버린다.

세 번째 부분은 재니와 티 케이크와의 사랑과 결혼이야기다. 스탁스가 세상을 떠난 뒤 재니는 끊임없이 구혼자들에게 시달린다. 재니는 그 와중에 티 케이크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제니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사랑이 충만한 결혼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습지에 거대한 허리케인이 불어 닥치고 티 케이크는 물에 빠진 재니를 구하다가 미친 개에 물려서 광견병에 걸리게 된다. 재니의 헌신적인 간호에도 불구하고 티 케이크의 상태는 악화되고 결국은 광기에 사로잡혀 재니를 총으로 쏘려한다. 재니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티 케이크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살인죄로 기소된 재니는 법정에 서게 되고 티 케이크의 흑인 남자 친구들은 그녀에게 불리하게 증언한다. 오히려 그 지역의 백인 여성들이 재니를 변호하고 백인 배심원단은 재니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표면상 『그들의 눈은 신을 보았다』는 사랑이야기다. 재니는 몇 번의 결혼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사랑과 행복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한 여성이 자아를 확립하고 독립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재니의 일종의 ‘성장소설’로 평가할 수 있다. 재니가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내적으로 성장하고 자아를 확립해가는 과정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허스턴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른 작가들과 대별된다. 그녀는 흑인들은 겪는 불평등과 억압에 대해 소리 높여 분개하거나 동정을 구하지 않는다. 그저 무심할 정도로 담담하게 스쳐가듯 언급할 뿐이다.

허스턴은 살아 있을 때는 작가로서 부와 명예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사후에는 많은 작가와 독자들이 기억하고 있다. 사족으로 보태자면, 『그들의 눈은 신을 보았다』는 오프라 윈프리가 제작하고 핼리 베리 주연으로 2005년에 영화화되었다. 시간적으로도 늦고, 그녀의 문학적 성과에 비해 부족하기는 하지만, 허스턴에게는 작은 감사 인사가 되었기에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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