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사회운동의 대부인 해고(海高) 이상록선생이 지난 달 신행정수도건설 충북연대 위원장직을 끝으로 일체의 직책에서 떠났습니다. 1970년 청주민간단체회장직을 시작으로 교육자로, 체육인으로, 사회운동가로 지역사회의 선봉에 서서 정열을 불태워 온지 34년만의 일입니다.

 좋은 일, 궂은 일 가리지 않고 워낙 일을 좋아하던 적극적인 성품이라서 그 동안 맡아왔던 자리가 꽤나 많았는데 짐을 벗고 이제 홀가분하게 ‘자연인 이상록’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상록 선생은 원래 교육자로 1957년 영동여고 교사로 첫발을 디딘 이래 청주농고교사, 대성중·대성여상·청주상고·청석고 교장으로 1980년까지 23년을 교직에 몸담았습니다.

 그는 얼마 전까지 청주로타리클럽회장, 충북산악연맹회장, 충북체육회사무국장, 대한충효단연맹 총재, 문장대용화온천개발 저지위원장, 경부고속철 충북유치 및 오송역유치위원장, 호남고속철분기역 유치위원장, 행정수도건설 충북연대위원장등 여러 단체를 맡아 이끌어 왔습니다.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77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노익장을 과시하며 이리 저리 밤낮없이 뛰어다녔습니다. 지역사회에 골칫거리가 생기면 그 중심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었고 모두가 망설일 때 주저 없이 앞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10년투쟁 끝에 문장대 용화온천을 저지시키는 쾌거를 이루었고 경부고속철 오송역을 관철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원래 보수적인데다 주장이 분명하다 보니 때로는 구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을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지나치게 강해 뒷말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상록선생은 행정수도 탈락을 둘러싸고 일부 신문이 자신을 향해 ‘책임론’을 거론 한 것에 대해 몹시 서운해하고 있습니다. 책임을 지라니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책임을 지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로부터 임명을 받은 것도 아닐뿐더러 단돈 한푼 받은 일없이 지역사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만 했는데 무슨 책임이냐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 대역사인 행정수도 이전이 도지사나 어느 한 개인의 힘에 좌우될 수 있느냐는 당연한 논리입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노라면 누구에게나 공과에 대한 훼예포폄(毁譽褒貶)은 있기 마련입니다. 잘잘못에 따라 칭찬과 비판이 함께 있는 것이 세상사입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이상록선생이야말로 우리 지역의 큰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흠이야 없지 않았겠지만 그 분처럼 지역을 사랑한 분도 흔치는 않습니다.

 행정수도 탈락의 와중에 척추 골절상을 입고 지금 사창동의 한 병원에 입원중인 이상록선생은 “뚜렷하게 일을 끝내지 못하고 물러 나는 것이 아쉽지만 여한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40성상을 몸을 불태워 지역사회에 바치고 떠나는 분일진대 어찌 여한이 없다 하겠습니까. 

 평소 그를 지켜봐 온 어느 분은 안타깝게 말합니다. “앞으로 궂은 일이 생길 때 누가 앞에 나설지 모르겠습니다”라고요. 그 흔한 감사패도 박수도 없이 뒤로 물러 난 선생에게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따뜻한 마음의 인사를 보내는 것이 모두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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