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고미숙의 <낭송의달인 호모 큐라스>

김주란
청주시립 서원도서관 사서

나와 가끔 밤에 만나 운동을 하는 지인은 서울 감이당으로 매주 한번 3년째 공부하러 다닌다. 감이당은 인문의 역학을 화두로 하는 지식인공동체이며 이곳에서 열리는 강연과 세미나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수강생으로 늘 넘친다고 한다. 그녀가 전해주는 중년 남녀들의 공부 모습들이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특히 수업 시작과 끝에 한다는 암송, 낭송오디션, 낭송페스티벌, 에세이 쓰기 등을 말할 때 힘들어 죽겠다는 말 속에는 자부심과 뿌듯함이 잔뜩 묻어난다. 이 책은 그녀가 소개해준 것으로 지난해 말 출간된 고미숙의 신작이다.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는 이후 동양고전을 낭송용으로 편역한 28편의 낭송Q시리즈를 여는 책으로 고미숙이 이 시대의 공부법으로 낭송을 제안하면서 그 취지와 이론, 주장이 담겨 있다.

7년전 <공부의달인 호모 쿵푸스>에서도 고미숙은 공부의 비법으로 고전읽기와 암송, 구술을 강조하였는데, 그때도 깊이 공감하였던 대목이다. 이제 공동체에서 여러 방법으로 그 효과를 실험하고, 본격적으로 낭송의 비법을 설파하자 나선 것이다. 이 책은 벌써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데 올 해 말 전국적인 낭송페스티벌 행사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 제목: 낭송의달인 호모 큐라스 지은이: 고미숙 출판사: 북드라망
낭송이 최근 주목받고 있는 독서운동이라지만, 사실 근대 이전까지 수천년간 인류는 책을 소리로 터득했다. 구술과 암송, 낭독, 낭송 등은 우리 선조들의 공부법이었다. 소리 내어 읽고 또 읽고... 문밖의 서당개가 그 소리를 듣고 풍월을 읊을 때까지 몸으로 읽기를 중시했다.

하지만 요즘의 독서는 묵독만을 의미한다. 18세기 부르주아 시민계급의 부상이후 공적이고 사교적인 낭독보다 개인의 독서인 묵독이 대세를 이루고, 이후 책이 대중화됐다. 소리 내어 읽기에는 책의 양이 많아졌으며, 개인의 영역이 강화되면서 책과 소리는 점차 분열됐다. 급속도로 소리가 사라진 음소거 상태에서 정신과 신체의 활동이던 독서는 점차 이분되어 신체는 허약해지고 사고는 우울해지고 있다. 근래 들어 신체의 일부가 된 스마트폰으로 인해 그런 현상은 더욱 가중되고, 오감각 중 시각적인 것만 성하다보니 다른 감각들은 동떨어지고 균형은 깨지고 있다.

우리시대의 군상들이 자신의 소리를 잃어버렸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산에 올라 야호! 라도 외칠라치면 소리를 내기가 어렵다. 돌이켜 보건데, 진정한 나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학교현장의 모습도 떠오른다. 선생님은 혼자 말하고, 대부분 엎드려 있는 아이들과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아이들의 모습, 이 아이들에게 몸을 쓰는 낭독과 낭송의 독서법을 함께 하자고 한다면 조금은 생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몸 따로 머리 따로에서 조금은 연결고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미숙에 따르면 공부란 곧 일상의 생각과 언행을 일치시키는 행위다. 생각은 머리가, 말은 입과 혀가 담당한다는 점에서 낭송은 머리와 입을 일치시키는 연습이다. 따라서 공부일 뿐 아니라 삶까지 바꾸는 '양생법'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큐라스'는 배려, 보살핌, 치유 등을 뜻하는 영어단어 '케어'(care)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로 낭송과 양생의 결합이라는 의미를 담은 제목이다. 작가가 말하는 낭송은 단순히 책을 소리 내 읽는 '낭독'이 아니며 내용을 외우는 '암기'와도 다르다. 그가 추구하는 책읽기는 낭독을 넘어선 '암송'이다. 소리로써 텍스트를 몸 안에 새기기, 즉 '몸이 곧 책'이 되게 하는 행위가 낭송이다.

<낭송의달인 호모 큐라스>를 읽어보면 몸으로 공부하는 충만함에 대해, 또 오랜 시간 구전되어왔던 고전을 제대로 읽는 방법으로 무엇보다 낭송이 좋다는 작가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책 호모 큐라스를 읽고 다가오는 봄 산책길에 한 손안에 쏙 들어오는 낭송Q시리즈로 고전을 낭송해보자. 천지가 내게로 감응해오는 충만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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