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은 안으로 굽는’교수사회, 문제 파헤치기는커녕 덮기만 급급
국가인권위원회 진상조사 권고에도 시간만 끄는 당국도 못 믿어

대학교수 ‘갑질’해부
대학 내 인권센터 필요해

최근 도내 대학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공통점은 학생들이 국가인권위에 제소하면서 여론화됐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학교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국가인권위에 문을 두드렸고, 다시 인권위에서는 학교가 진상조사를 하라고 내려왔다. ‘팔은 안으로 굽는’ 교수사회에서 교수들의 문제는 제대로 파헤쳐지지 않는다. 진상조사나 징계위원회가 열려도 모두 교수들이 위원을 위촉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홍성학 교수노조 수석부위원장(충북보건과학대 교수)은 이에 대해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국가인권위에 이 같은 내용을 알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방자치 시대 인권의 문제도 자치의 개념으로 해결돼야 한다. 충북의 문제는 충북에서, 더 나아가 대학의 문제는 대학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데 그러한 안전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 대학 내 벌어지는 비위사건을 밝히려면 강의실에 CCTV라도 달아야 할까. 적어도 인권의 문제를 다루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서울대 처리방식 ‘부럽네’

서울대에서 잇따라 성추행 사건이 터졌다. 서울대 내 마련된 인권센터는 진상조사를 맡았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문제제기한 학생들뿐만 아니라 그 수업을 들은 모든 학생들에게 ‘전수조사’를 한 뒤 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사건 이후 대처 방법이 확연히 다르다. 한국교통대는 전형적으로 시간끌기만 하고 있다. 직원 사찰건과 모 교수의 폭언과 비위사실 등이 드러났지만 수개월 째 조사만 하고 있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대책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교통대의 한 직원은 “학교에 직원 사찰에 관해 플래카드가 걸렸는데 그날 교무회의에서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만큼 교수사회가 폐쇄적이고, 사회의 요구에도 둔감하다”라고 에둘러 말했다.

대학에 현재 인권센터가 있는 곳은 서울대, 중앙대, 충남대, 카이스트다. 그 외 대학에서는 ‘인권’과 관련한 문제가 터져도 상담을 받을 곳이 없다. 한국교통대의 경우 지난해 심리상담소가 뒤늦게 생겼지만 인권센터의 기능을 하고 있지는 않다. 조희찬 한국교통대 교무처장은 “사후조치로 인권 및 고충 상담소 개소를 계획하고 있다”라고 답했지만 실제 설치 가능성은 미지수다.

전국 4개 대학 인권센터 설치

또 학생들은 피해를 받아도 교수와의 관계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 내 터놓고 말을 할 수 있는 창구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대학마다 양성평등연구소가 운영돼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상담이 이뤄지고 있지만 사건이 터진 후 양성평등위원회가 열리는 식이다. 청주대에서는 3년 전 교수와 학생간의 성희롱 사건으로 회의가 열린 게 전부다.

현재 대학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진로와 심리 상담을 하는 기관이 운영되고 있지만 소위 교수와의 마찰이 빚어져서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대학에서 상담을 맡고 있는 한 연구원은 “교수와 학생 간 소위 갑을 관계에서 생긴 문제를 상담 받을 공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라고 설명했다.

청주대 총학생회는 얼마 전 학생들의 고충을 듣기 위해 상담국을 만들었다. 청주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학생들은 정말 답답하다. 문제가 터져도 참아야 한다. 교수는 진짜 갑이다. 학교 내 커뮤니티 자체가 없다. 일반 학생들이 학생지원팀을 찾아가 부당한 것을 말하면 귓등으로 듣는다. 다시 돌아가라고 말한다. 그나마 학생회 활동을 해야 대화라도 할 수 있다. 학생들은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아예 학교에 대한 관심을 끄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한 교직원은 “솔직히 성폭력, 비위 사건이 터져도 제대로 수사하기가 어렵다. 수사권도 없는데다 직원들은 교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상해를 입히거나 형사고발로 넘어가지 않으면 감정선을 다루는 문제라 조사하는 게 힘들다. 서울대와 지방대는 같은 사안이 발생해도 솔직히 처리 방식이나 파장이 다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홍성학 위원장은 “대학 내 인권교육이 부재하다. 교수, 직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이 의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인권센터 설립도 필요하다. 대학이 하지 못한다면 지자체 내에서라도 인권센터가 설치돼 이러한 문제를 다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서열화된 문화, 갑질로 변질됐다”
인터뷰/ 홍성학 교수노조 수석부위원장

▲ 홍성학 교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대학 내 인권센터가 설치돼 갑을관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이 서열화 돼있다는 가장 큰 문제다. 교수와 학생, 학생과 직원, 같은 교수끼리도 갈등이 존재한다.”

대학사회의 교수집단은 크게 둘로 나눠져 있다. 정년 트랙 교수와 비정년 트랙 교수다. 비정년 트랙교수는 2002년 계약임용제가 실시되면서 생겨났는데 2011년 급증하게 된다. 2011년 이명박 정부가 대학의 구조개혁을 실시하면서 ‘전임교원 확보율’을 지표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정년 트랙 교수도 전임교원으로 인정해 사실상 채용의 길을 열어준다. 대학에서는 정년트랙 교수 1명을 쓰는 대신에 비정년 트랙 교수 여러 명을 채용하면서 비용절감에 나서게 된다. 비정년트랙 교수는 강의전담교원과 산학협력중점교원이다.

홍성학 교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비정년트랙교수나 정년트랙교수나 계약에 따라 임용되기 때문에 정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둘 간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 정년트랙 교수들로만 교수회 조직을 꾸리고 비정년 트랙교수는 아예 껴주지 않는 곳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의 경우 더 큰 문제는 단기, 저임금이라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학별 비정년트랙 전임교원 운영 현황(2013년 4월 기준,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실)에 따르면 계약기간이 평균 2년이고 평균 임금은 3655만원, 강의 시수는 11시간이다.

대학에서는 교수와 교수와의 문제뿐만 아니라 직원과 학생, 교수와 직원간의 갈등도 여전히 반복된다. 최근 한국교통대에서 벌어진 직원사찰건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뤄졌다. 안병성 전국대학노조 한국교통대 지부장은 “국립대 교수는 갑중에 갑인 것 같다. 대학 사회에서 교수와 직원의 위치는 절대 동등하지 않다. 총장 투표권만 해도 20명의 교수당 직원 1표가 있을까 말까다”라고 설명했다.

홍 위원장은 “교수가 갑이 된 게 잘못된 거다. 서열관계가 문화적으로 내재돼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갑질로 발현돼서는 안 된다. 교수들이 제일 먼저 반성해야 할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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