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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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악 ‘그리움’
  • 충북인뉴스
  • 승인 2015.02.0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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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시 읽기<2>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은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이용악 ‘그리움’ (시집 <오랑캐꽃>1947)


울창한 수림 사이로 검은 연기를 날리며 느릿느릿 달리는 밤기차 위에 함박눈이 마구 쏟아져 내립니다. 어느 겨울, 눈이 좋은 ‘북쪽 마을’에 머물게 되어, 함께 어깨를 걸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도 바라보고, 그곳 사람들의 생경한 사투리도 구수하게 들으면서, 긴 밤을 지새우고 싶은 마음이 눈처럼 쌓이는 시입니다.

백무선(白茂線) 철길은 함경북도 백암과 무산을 잇는 192km에 달하는 산림 철도지요. 마천령산맥과 함경산맥 사이의 엄청난 산림자원을 착취할 목적으로 일제가 1932년에 완공한 벌목용 철도입니다.

시인은 두만강 근처 한반도 최북단에 위치한 경성에서 태어났지요. 그의 시에 자주 나타나는 유랑의식이나 북방정서는 시인의 견고한 고향의식에 기인한 것이고요. 또한 6. 25가 나던 해에 다시 월북하게 되는 것도 이런 필연적 운명에 따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시는 눈 내리는 겨울밤을 배경으로 그리운 ‘너’를 두고 온 ‘작은 마을’을 향한 지극한 마음을 토로합니다. ‘북쪽’으로 호명되고 있는 이곳은 험준한 벼랑을 굽이돌아 연달은 산과 산 사이에 놓여있는, 백무선 기차가 밤을 새워 달려야 하는, 쉽게 가 닿을 수 없는 곳이어서 더욱 사무치게 그리운 곳 입니다.

잉크병마저 얼어드는 추운 겨울이면 ‘차마 그리운 북쪽’을 향해 지성으로 묻고 있네요. 지금 눈이 내리느냐고, 함박눈 쏟아지느냐고. 그리움을 다해 묻고 또 묻는 목소리가 멀리 ‘북쪽’ 기슭에 사는 동포의 가슴에 가 닿을 때까지, 우리도 묻고 또 묻고 싶은 남쪽의 겨울밤입니다. <허장무 글·이은정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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