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수동성당 윤정현 신부의 철학, 더 낮은 곳으로…

성공회 수동성당 윤정현 신부(61)는 청주에서 5년 가까운 임기를 마치고 더 낮은 곳으로 떠난다. 공식적으론 연구년을 신청했지만 올해 연구보다는 봉사로 바쁜 한 해를 보내게 됐다. 영국 대학에 논문제출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도, 가나, 네팔을 돌며 그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먼저 2월 2일부터 10일간 그는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의 공동체로 떠난다. 인도 옛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하이더라바드에 있는 공동체는 윤 신부가 지난 15년간 인연을 맺은 곳이다. 윤 신부의 노력으로 그 곳에는 고아원과 염소조합(goatbank), 학교가 세워졌다. 윤 신부는 “불가촉천민은 인간의 대우를 받지 못해요. 전체 인도 인구 13억명 가운데 15%인 2억 5000여명이 가난에 찌들어있죠. 만져서도 안 되는 사람들이죠”라고 설명했다.

사진/육성준 기자

영국 유학길에 만난 인도신부

윤 신부는 영국 버밍엄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서른이 넘어 목회를 시작했고, 마흔이 넘어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불가촉천민 출신의 윌승싱검 신부를 만났다. “같이 공부하면서 인도의 상황에 대해 많이 듣게 됐어요. 만약 싱검 신부가 다시 불가촉천민에게 돌아가 활동한다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죠. 그런데 1999년 싱검 신부가 한국에 왔어요. 그 후 해마다 기금을 모아 인도에 전달하고 있어요.” 싱검 신부는 그 곳에서 100여개의 교회 공동체와 80명의 목회자를 배출했다고 한다.

정작 윤 신부가 버밍엄에서 공부한 내용은 ‘다석 유영모 선생’의 사상이었다. 그는 다석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논문을 냈다. 다석 유영모 선생(1890~1981년)은 동양적 사상으로 서양의 종교인 기독교를 재해석한 인물이다.

교육자, 철학자, 종교가이도 했던 그는 정인보, 이광수와 함께 194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리기도 했다. 1921년 오산학교 교장을 지내다 이후 은퇴하여 농사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노자’를 번역했다. 기독교를 유, 불, 선으로 확장하여 이해했으며 그가 주장한 종교다원주의는 서양보다 7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이러한 종교사상은 1998년 영국의 에든버러(Edinburgh)대학에서 강의됐다. 제자 중에서 가장 아끼던 이는 함석헌으로, 함석헌의 씨알 사상 또한 유영모 선생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윤 신부는 “다석의 사상이 지금 시대에 간절히 필요해요. 세계가 근본주의 배타주의로 매일 싸우고 있잖아요. 유영모 선생은 통종교 사상을 이야기했죠. 인류가 공존해서 사는 방법은 각자의 종교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다르다 틀렸다라고 싸우지 말고, 종교에 매이지 않고 넘어서야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 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해요. 알고보면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부처, 예수도 각자 제 소리를 냈던 인물이에요”라고 설명했다.

하늘을 꿰뚫고 내는 소리, 하늘에서 울려주는 소리가 진짜 복음이라는 것. 서양의 선교사가 알려주는 성경이 아니라 동양의 철학으로 녹여낸 성경. 다석은 절대자 하나님의 존재를 ‘없이 계시는 하느님’으로 이해했다. 서양의 철학인 존재와 비존재의 개념으로 절대자를 본 게 아니라 동양의 사상인 태극과 무극, 이와 기의 사상으로 해석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설명되는 분이 아니죠. 다석은 기도를 통해 깨달은 사람은 절대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고 봤어요. 또한 한글을 하늘과 맞닿은 소리로 이해했죠. 한글은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묘한 법칙이 있어요. 땅의 소리가 아니라 하늘의 소리라고 본 거죠.”


이러한 다석의 사상은 오늘날 활발히 연구 중이다. 2008년에 세계 철학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됐는데 윤 신부는 다석에 관한 연구로 발제하기도 했다. 당시 유영모, 함석헌, 정약용, 최치원 등이 사상가로 소개됐다.

다석 유영모의 가르침

다석의 가르침을 연구한 윤 신부에게 공동체는 너무나 중요한 가치다. 다석은 늘 가난한 공동체를 강조했다. “신앙은 지행합일이 제일 중요해요.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제대로 신앙하는 사람이에요.”

그는 몇 해 전 가나에 유치원을 설립했다. 여성이 교육을 받아 가난의 대물림을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서다. 가나에 2개의 유치원이 설립돼 운영 중인데 청주에 있는 ‘커피나무집’카페에서 매달 자선공연회를 열고 그 수익금을 전달해 왔다. 윤 신부는 네팔에도 한국문화원을 건립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고창에 여성쉼터를 크게 낼 계획이다. 이미 김포, 대전에서 여성쉼터를 운영했다.

“쉼터는 성매매 피해 여성을 구출하고 지원하는 기관이에요. 아내가 맡아서 운영해왔죠. 그 일을 통해 27명의 아이들의 생명을 구했어요. 고창에 집을 새로 지을 건데 친환경으로 전기 안 쓰는 공동체를 만들 겁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집이죠.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다석 사상을 더 실천하고 연구하고 싶어요.”
다석은 농사 짓는 게 가장 하나님의 일에 가깝다고 말했다. 윤 신부는 별도의 국가지원은 받지 않을 계획이다. 왜냐면 정산 절차가 복잡해지고 운영의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순수 후원을 통해 시설을 운영할 예정이다.

윤 신부는 그 일을 위해 3년 간 휴직계를 쓸 생각도 있다. 그러면 정년이 된다. “27명의 아이들과 대안학교도 운영할 계획이에요. 아이들이 생명을 얻었고, 커나가기 때문에 그로 인해 마땅히 할 일들이 생겨난거죠. 그 자체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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