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되어버린 여성, 버지니아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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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되어버린 여성, 버지니아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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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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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모더니즘이 키워드

영화를 통해 문학 읽기24
윤정용 평론가

▲ 디 아워스 The Hours , 2002 -감독 스티븐 달드리 -출연 메릴 스트립, 줄리안 무어, 니콜 키드먼

버지니아 울프(1882-1941)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버니지아 울프는 영국 문학, 더 나아가 세계문학에서 모더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비평가이자 뛰어난 소설가이다. 특히 그녀는 제임스 조이스와 더불어 현대 소설의 가장 중요한 본령인 ‘의식의 흐름’ 기법을 확립했다고 평가받는다. 『자기만의 방』(1929), 『등대로』(1927),『댈러웨이 부인』(1925)과 같은 그녀의 대표작들은 그녀의 뛰어난 지성과 문학성을 예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녀의 문학만큼이나 혹은 그녀의 문학과 달리 너무나 극적이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간단히 살펴보면, 그녀는 철학자이자 『영국 인명사전』의 편저자이기도 한 레슬리 스티븐과 줄리아 덕워스 사이에 세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그녀는 빅토리아조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 속에서 지적 세례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버지니아 울프가 여자 아이였지만 총명했기에 그녀에게 남자아이와 차별 없는 교육을 시켰다. 당시 빅토리아 시대에는 남편을 잘 받들고 자녀를 잘 키우는 여성이 이상적인 여성상이었기에 상류층에서는 대부분 여성에게 전문적인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진보적인 아버지 덕분에 예외적으로 고등교육을 받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30세 때 평론가 레너드 울프와 결혼했고, 레너드 역시 그녀가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헌신했다. 그녀는 처녀작 『항해에 나서서』(1915) 등으로 문단의 주목을 끌었고, 출세작 『제이콥의 방』(1922), 어느 정치가 부인의 하루 생활을 통하여 여러 인물의 의식 교류를 그린 『댈러웨이 부인』, 불놀이 구경에 나서는 이야기를 테마로 심리의 움직임을 그린 『등대로』등 걸작으로 ‘의식의 흐름’을 쫓는 내면 묘사와 시적 문체로 문단에서의 지위를 확보했다.

진보적인 교육을 받은 울프

이후 버지니아 울프는 독창적인 공상과 구상력에 의한 전기적 소설 『올랜도』(1928), 이른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변화하는 파도의 묘사와 더불어 여섯 남녀의 내적 독백을 이어간 『파도』(1931), 시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애견을 주인공으로 하여 부인의 생활을 그린 『플래시』(1933), 어느 중류 가정의 일가를 통하여 1880년 이래의 약 50년 간, 3대에 걸친 세상과 인생을 다룬 『세월』(1937)을 발표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주변에는 새로운 예술가가 모여들어 ‘블룸즈버리 그룹’을 형성했다. 그녀는 비평가로서도 뛰어나, 여성과 문화와의 관계를 논한 『자기만의 방』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공군의 런던 폭격이 한창일 때 ,최후의 작품 『모간』(1941)을 남기고는 돌연 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성을 간단하게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야기하자면, 그녀의 문학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페미니즘’과 ‘모더니즘’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하면 때로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이미지, 예컨대 남성과 여성의 평등, 더 나아가 대립, 투쟁 등이 연상되지만, 울프의 페미니즘은 그와 거리를 둔다. 왜냐하면 그녀 스스로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작품 곳곳에서 시종일관 남녀의 합일을 상징하는 양성성을 반복해서 주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독자들이 울프를 더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여성의 삶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문학을 소재로 그녀의 극적인 삶을 잘 보여주는 작품은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1998)이다. 개인적으로 소설보다도 스티븐 달드리가 연출한 영화 <디 아워스>(2002)를 먼저 보았다.

1923년의 버지니아 울프와 1949년의 로라 브라운, 그리고 1999년의 클래리사 본. 버지니아는 『댈러웨이 부인』을 쓰고,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클래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고 불린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여인들, 그러나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들은 연결되어 있다. 소설에서는 세 여인의 이야기가 분절되어있다면, 영화에서는 이들의 삶을 교차 편집해 마치 한 사람의 삶인 것처럼 유기적으로 보여준다.

다시 소설 『세월』로 돌아가자.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버지니아 울프라는 기원을 갖고 있다.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 그러하고, 또 우리말로는 『세월』(The Years)이라고 번역된 그녀의 작품과도 무관하지 않다.

‘가치 없음’으로 자살을 선택

『세월』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에서 나타나는 삶과 시간의 ‘가치 없음’은 자살을 계획하는 로라, 그리고 실제로 자살을 감행한 리처드에게로 전이된다. 그런데 이 작품의 특장은 그런 극적인 상황을 감정적으로 전혀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사랑이라는 이름의 광고하고 부조리한 열정, 동성애와 에이즈, 리차드와 클래리사 사이의 딸 줄리아가 보여주는 히피성 페미니즘 등 사회적으로 휘발성이 강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감정을 통해 증폭시키기보다는 독자로 하여금 작중 인물들의 내면적 심리의 섬세한 결을 어루만지는 낮은 배음 속에 젖어 들게 한다. 또한 그런 극한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특히 리처드의 자살 뒤 아들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로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지 않고 감정을 절제한다. 또한 잠자리를 내어준 손녀와의 대화에서도 시종일관 평정심을 유지한다. 어쩌면 그녀의 감정의 절제는 아들의 삶에 깊은 슬픔을 드리운 그녀의 죄책감과 그에 따른 고통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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