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 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노동 상담을 하다 보면 연차휴가와 관련된 내용이 꽤 많다. 얼마 전 어떤 분이 전화로 연차휴가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다. 그런데 아무리 설명해도 연차휴가가 사후적으로 발생한다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성실 근로를 담보로 사후 발생되는 현행 연차휴가제도는 과연 ‘자연스러운’ 것일까?

연차휴가 제도의 본래 목적은 적정한 휴식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업장에서는 연차휴가 제도를 아예 운용하지 않거나 변칙적으로 운용하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장시간 노동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래서 노동 시간 단축 등을 입법화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따라 노동자들도 연차휴가를 제대로 보장받고 싶다는 인식이 강해진 듯하다. 하지만 쉬느니 연차수당으로 보전 받겠다는 노동자도 여전히 많은 실정이다.

나는 제대로 쉬는 것이 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휴식을 취해야 생산성도 높아진다는 공리주의적인 논리가 아니다. 노동인권 차원에서 휴식권 보장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연차휴가를 휴식권 보장 차원에서 보면, 출근율 80%를 충족해야 비로소 사후적으로 발생하는 현행 연차휴가제도는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3년차부터 가산휴가가 1개씩 생기는 것도 이상하다. 근속 연수가 늘어날수록 일을 많이 할 테니 좀 더 쉬고 더 열심히 일하라는 건가. 1년 미만 노동자에게 1달 개근 시 1개씩 연차휴가를 주고 다음 해에 공제하는 것도 참 쩨쩨하다. 어떤 사업장에서는 1년 근무 안 했으니 연차휴가가 없다며 못 쉬게 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연차휴가를 이리저리 굴리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공휴일을 연차휴가로 대체하기, 월급에 연차수당 1개씩 선지급하기,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취업규칙에 대한 동의로 갈음하기 등등…

우리 이러지 말자. 이른바 달력의 ‘빨간 날’을 법정휴일로 지정하자. 연차휴가 대체 제도를 없애버리자. 싫어할 사람이 많겠지만 연차수당도 없애버리자.

그냥 좀 쉬자. 성실 근로를 조건으로 걸지 말고 사전적으로 휴가를 부여하자. 그리고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휴가일수를 부여하자. 신입 사원이든 고참이든 쉬고 싶은 건 마찬가지 아닌가.
욕 먹을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휴식할 권리를 돈으로 환산하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한, 휴식권을 온전히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현행 근로기준법의 연차휴가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 연차수당을 계산하는 것은 더욱 복잡하다. 앞서 전화로 연차휴가에 대해 상담을 요청했던 분이 현행 연차휴가 제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의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사회적 감성’을 형성할 때 법과 제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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