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노 충주담당 차장

▲ 윤호노 충주담당 차장
지난해 우리 사회는 ‘갑의 횡포’가 기승을 부렸고, 이로 인한 피해자가 속출했다.
최근 허니버터칩으로 승승장구하던 크라운제과가 소속 영업사원들에게 무리한 판매목표를 설정하고, 실적 압박을 가했다. 이는 곧 사원의 가상·덤핑판매로 이어졌고, 그 중에는 판매손실금을 메우기 위해 대출을 받고 빚더미에 오른 직원도 나타났다. 국민들을 경악케 했던 ‘땅콩 회항’ 사건도 전형적인 갑질의 횡포에 속한다.

2015년 을미년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갑의 횡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충주시의 경우 엄정면 행정마을 등 4개 마을이 송전선로 건립을 둘러싸고 반발하고 있다. 비단 엄정면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송전탑 강행과 관련된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전원개발촉진법’을 꼽는다.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인 1978년 만들어진 전원개발촉진법은 사업자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부터 실시설계 승인을 받으면 19개 법령에서 다루는 인허가 사항을 모두 거친 것으로 봤다. 도로법 등은 다른 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인허가 검토과정에서 시설 설치의 문제점을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전원개발촉진법은 이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무엇보다 전원개발촉진법은 주민 처지에서 중요한 입지선정 절차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때문에 송전선로의 입지 선정은 법률적 근거 없이 사업자인 한전의 내부 방침에 따라 진행된다.

한전은 한전 관계자, 주민대표, 지역전문가, 갈등조정 전문가 등으로 입지선정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지만 법률상 설치 근거가 없다. 위원회 결정이 강제력이 없을 뿐 아니라 한전이 임의로 내부에 입지선정위원회를 두고 운영하거나 아예 위원회 설치를 생략할 수도 있다.

2009년 개정 때 주민의견을 듣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됐지만 이마저도 한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요식행위로 진행될 수 있다. 입지선정과 경로 결정에 주민참여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2010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주민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전원개발촉진법을 개정하도록 권고했지만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다.

피해보상도 법률에 규정된 내용이 협소해 사업자인 한전이 사실상 법률적 근거 없이 내부규정에 따라 해왔다. 법률상 보상이 아닌 간접적, 임의적 보상이기 때문에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을 적대적인 관계로 만드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최근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이 역시 송전시설 설치가 ‘완료된 뒤’의 보상만 다루므로 건설과정의 절차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법률은 아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한전에 의해 송전선로가 지나가도록 계획된 곳의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계획을 받아들이거나’, ‘보상금을 좀 더 받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전형적인 ‘갑의 횡포’에 주민들이 맞설 방법이 없는 것이다.

새해엔 주민들을 울리는 전원개발촉진법에 대한 문제가 공론화되고, 법 개정을 통해 ‘갑의 횡포’가 멈춰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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