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각색한 희곡 『살로메』…세기말 퇴폐적인 감성 드러내

영화를 통해 문학 읽기21
윤정용 평론가

▲ 와일드 살로메 (2011) Wilde Salome 감독 알 파치노 출연 알 파치노, 제시카 차스테인, 케빈 앤더슨, 에스텔 파슨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한 ‘유미주의’ 혹은 ‘탐미주의’ 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한 시인이자 극작가이자 소설가다. ‘예술의 생활화’를 주창한 그는 기이한 옷차림과 행동으로 점잖은 혹은 점잖은 척하는 보수주의자들을 경악케 했으나, 동시에 당시의 젊은이들은 그를 ‘댄디 보이’로서 우상으로 숭배했다.

‘데카당스’ 예술을 이끈 선도자답게 와일드의 삶은 한마디로 ‘반사회적’이었다. 빅토리아 사회의 상류층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조롱하며 당대의 온갖 사회의 규범과 윤리를 거부하고 맞선 그는, 결국 1895년 알프레드 더글러스 경과의 남색 사건으로 기소되어 2년 동안 수감된다. 와일드의 수감은 빅토리아 시대의 귀족 또는 상류층의 성윤리 혹은 성도덕이 얼마나 위선적이며 경직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었다.

‘댄디보이’가 된 작가

와일드는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을 남긴 작가로서 날카롭고 재치 있는 언어로 빅토리아 시대의 통속적인 도덕과 양식을 조롱하고 공격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색채는 추함, 악, 병폐 등에서 시적인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던 탐미주의 예술가로서의 면모와 점잖 빼는 영국 사회에 대한 반항아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와일드의 세기말의 탐미적이고 퇴폐적인 취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무엇보다도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기도 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1891)이다. 소설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듯이, 미모의 청년 도리언 그레이가 쾌락의 나날을 보내다 악덕의 한계점에 이르러 마침내는 파멸한다는 이야기이다. 끝 모를 쾌락과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주인공 도리안 그레이의 모습에서 작가 와일드의 불안함이 겹쳐진다.

어쩌면 소설에서 도리안 그레이의 비극적 결말은 작가 자신의 불길한 운명의 전조라고도 할 수 있다.

와일드의 탐미주의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으로 희곡 『살로메』(1893)를 들 수 있다. 주지하듯, 『살로메』는 성서에서 연원한다. 기원 후 30년경에 벌어졌던 유대의 왕 헤로데의 세례자 요한 참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살로메 이야기’는 성경의 마태복음 14장 6절부터 11절에 걸쳐 실려 있다. 성서에 따르면, 헤로데 왕은 정치적으로 실각한 형 빌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이 그들의 결혼을 근친상간으로 비난했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헤로데는 요한을 지하 우물에 가두었다.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
빌립보와 헤로디아 사이에는 살로메라는 딸이 있었는데, 헤로데는 의붓 딸인 살로메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살로메로 하여금 흥을 돋우기 위해 춤을 추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러자 살로메는 헤로디아가 시키는 대로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다.

사실 성서에 살로메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단지 헤로디아의 딸로만 언급될 뿐이다. 그러나 성서에 나오는 이 짧은 이야기는 후대 예술가들에게 끊임없는 예술적 영감을 주어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제공한 즐거움의 대가로 사람의 목을 요구한 살로메는 끊임없이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많은 작품 속에서 살로메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에 탐닉하다보면 파멸을 불러오는 위험한 여성, 즉 ‘팜므파탈’로 재현되었다. 살로메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남성의 타락과 파멸의 시작으로 보는 남성들의 집단적 공포감이 투사된 일종의 ‘기호’(a sign)라 할 수 있다.

오페라, 영화로 제작된 원작

『살로메』에서 살로메는 아름답지만 무자비한 파괴적 힘을 지닌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살로메 이야기는 와일드에게 뿐만 아니라 세기말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특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는 관능적이며 퇴폐적인 줄거리와 현란하고 화려한 음악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살로메는 오페라의 소재로서 뿐만 아니라 영화적 소재로도 이용되었다. 사실 살로메는 예수를 제외하면 신약성서의 그 어떤 인물보다도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1918년 테다 바라 주연의 무성영화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살로메를 소재로 많은 영화가 제작되었다. 특히 리타 헤이워드가 주연한 <살로메>(1953)는 그 어떤 살로메 영화보다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영화에서 살로메는 성서나 와일드의 원작과 달리 독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요한을 구하려 한다.

가장 최근에는 알 파치노의 <와일드 살로메>(2011)라는 작품도 있다. 이 영화에서 알 파치노는 와일드의 희곡을 원작으로 자신이 직접 각색하여 감독까지 맡았다. 심지어 헤로데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외에도 영국의 켄 러셀이나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같은 감독들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살로메를 영상화했다. 이처럼 살로메는 와일드를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면서 영화, 연극, 오페라 등으로 재현되었다.

어느 오페라 평론가의 말을 빌려 글을 맺으려 한다. “우리는 바라는 것을 갖지 못해서 생기는 안타까움이나 그것을 얻은 후에 찾아오는 비극의 아이러니를 ‘살로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진정 바라고 갈망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향한 나의 마음 그 자체가 아닐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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