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세광고 3학년 최혁준 군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출간

‘한국 동물원은 현대 동물원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청주 세광고 3학년 최혁준(18) 군이 최근 펴낸 <국내 동물원 평가보고서>의 부제다. 최 군은 전국 9개 동물원의 동물복지를 점검하고 종합적으로 평가해 보고서 형식을 빌어 사회에 질문을 던졌다.

동물을 좋아해 어려서부터 동물원을 자주 다녔다는 최 군은 외국의 동물원과 비교해볼 기회를 가지면서 우리나라 동물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책을 완성하는 데에 몰두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현대의 동물원은 동물의 종보존과 동물복지를 최우선으로 실현하는 것을 의무로 한다. 고등학생이 우리나라 동물원도 과연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피고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를 냈다는 것이 놀랍다.

아직 우리나라 동물원에 대해 학계나 동물보호운동단체 등 어디에서도 전문적인 평가서를 낸 적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더 놀랄 것이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 ‘책공장더불어’는 동물복지와 반려동물에 관련한 책을 꾸준히 펴낸 곳이다. 블로그를 통해 최 군을 소개받았다는 ‘책공장더불어’의 김보경 대표는 이 책이 첫 국내 동물원 평가서라고 단언했다.

동물사랑이 동물복지 생각하게 해

최 군이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몰입한 것은 지난 7월경부터다. 5개월 남짓한 기간에 380쪽 분량의 책이 완성됐다. 자료는 충분히 확보돼 있었다.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 ‘파충’(blog.naver.com/96spore)에는 그가 모은 동물과 동물원에 대한 국내외 자료, 국내 동물원 탐방기들이 올려져있다. 각 동물의 야생에서의 생활사를 정확히 알아야 그들이 동물원에서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 동물의 이상행동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이점에 대해 최 군은 “관심사가 오로지 동물이다 보니 기본 소양이 갖춰져 있었다”고 자신의 잇점을 설명했다.

그간 전문가를 찾아 자문을 구하고 그들이 추천한 자료를 구해 공부한 양이 “명문대 자유이용권을 끊을 만큼”이라고 덧붙였다. 최 군은 대구 달성공원 동물원, 대전 오월드 주랜드, 서울대공원 동물원,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나라, 청주동물원 등 국내 9개의 동물원을 꼼꼼하게 살펴 관람객 입장에서 동물복지 수준을 평가했다. 동물원 관계자와 인터뷰하고 논문과 보고서들도 참고했다. 책에는 동물을 사랑하는 청소년의 감성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집에서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들은 최 군에게 가족과 같다. 중학교 때부터 이구아나, 거북이, 앵무새와 함께 살았다. 어린 시절 공룡에서부터 시작한 동물들에 대한 애정은 동물원의 동물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동물에 대한 관심이 동물원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동물원의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만지고, 타고, 소리를 질러 자극하는 관람 문화에도 할 말이 많다. 최 군은 “대중에게 올바른 정보를 주고 동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도 동물원의 의무”라면서 “관람객도 동물원이 잘하는지, 못하는지 가려 따질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수준 높은 관람객이 동물원을 바꿔갈 수 있다는 것이다.

대입 앞두고 책출간 선택 “후회없다”

국내 주요 동물원을 모아서 비교 평가해 보자는 ‘동물원 평가 프로젝트’에 동물관련 블로그 이웃들이 힘을 보탰다. 자료수집에 능한 용소중학교 김민주 학생은 사진과 기사수집을 도왔다. 배재고등학교 이우진 학생은 답사를 함께 하면서 평가에 많은 의견을 냈다. 서울동물원 패트롤 4기로 활동하고 있는 비산 중학교 양성민 학생 등 다수의 동물애호가 청소년들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최군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최 군처럼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하고 관심을 키워온 청소년들이 많지만 이 분야를 자신의 진로로 선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학에 동물관련학과, 특히 동물복지를 공부할 수 있는 학과가 제한되어 있는 것도 주된 원인이 될 수 있다. 최 군은 책을 출간하는 시기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시기가 겹쳐 어느 것에 집중할지 고민하다가 책을 선택했다.

대입 수시를 놓치고 정시를 앞두고 있는 최 군은 “후회는 없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공부가 많이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기 전에 책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고 전했다. 온 힘을 다해 책 속에 자신의 지난 시간을 쏟아냈기 때문일까. 최 군에게서 어느덧 앳된 청소년이 아닌 자신을 길을 개척해 나가는 당찬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최 군은 그간 가경동 가로수마을 작은도서관의 어린이들에게 반려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마을신문에 동물을 이해하고 애정 어린 관심을 바라는 글을 기고하는 등 지역사람들과 꾸준히 동물이야기를 나눠왔다. 이번에는 자신이 쓴 책의 독자를 만나는 자리가 마련됐다. 책 출간을 기념해 1월10일 최 군의 안내로 서울동물원을 탐방한다. 동물원과 동물복지, 우리가 배우고 생각할 과제가 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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