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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은 한국인의 영원한 향수다. 쇠죽 가마솥이 설설 끓는 사랑방 아랫목은 긴 겨울밤을 정담으로 지새는 우리의 보금자리였다. 가마솥은 어머니의 또 다른 분신이다. 이마에 인생 계급장을 서너 개 달은 어머니가 갓 스물 시집와서 흘린 짠지 쪽 같은 눈물을 모두 담으면 족히 가마솥을 채우고도 남는다. 그러기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했지 않았나. 소두 방에서 새어나오는 김은 어머니의 입김이요 한숨이다. 마르지 않은 청솔 가지 아궁이에 삶의 불 지피면서 아들 도시락 싸 줄 쌀알 한 줌은 가마솥 귀퉁이에 숨겨 놓았다.가마솥은 더디 끓는다. 어머니의 한이 불꽃 되어 아궁이를 달구면 동이 틀 무렵에야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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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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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문화재도 시대에 따라 모습을 약간씩 달리 하는 모양이다. 문화재는 늘 거기 있으나 주변 환경이 변하고 또 해체 보수작업으로 인한 변형으로 그때 그 맛이 그대로 살아있지 않다. 요즘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열리는 ‘충북 문화재의 옛 모습 전’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일제 강점 초기인 1910년부터 1930년대 사이에 찍은 사진으로 고즈넉한 모습이 일제의 카메라에 담겨 착잡하지만 우리 산하의 문화재에 대한 첫 기록물이어서 보존가치가 높다. 이번에 출품된 사진은 첫 선을 보이는 것으로 일제가 한반도를 통치하기 위해 문화재, 유적, 풍속, 생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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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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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꽃은 국악으로 피어난다. 아쟁소리에 개나리가 피어나고 가야금, 향피리 소리에 진달래, 철쭉이 붉은 울음을 터트린다. 개나리 마른 꽃대는 아쟁의 활이 되고 대나무 마디는 곧 퉁소나 피리의 재료가 됐으니 충청산하는 자연이 국악이요, 국악이 자연이다. 충북이 국악의 본고장이라는 점은 우륵, 박연 선생 등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중 2대 악성을 배출한데서 비롯된다. 우륵은 본래 가야국 사람이었으나 망국과 함께 악기를 들고 와 진흥왕에게 의탁하였다. 진흥왕은 그를 국원(國原:충주)에 머물러 살게 하고 대내마 주지(注知)와 계고(階古), 대사 만덕(萬德)에게 그 음악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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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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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馬韓)으로 가는 길엔 이정표도 없다. 그 오랜 풍상이 역사의 이정표를 갈아내고 우리의 의식 속에서도 마한은 지워져 버렸다. 역사의 미아, 마한은 부모산 일대와 LG 화학, 하이닉스로 통하는 제 3공단 외곽도로변 송절동에서 미로를 헤매고 있다. 신봉동 백제고분군은 3~5세기경 이른 백제의 지배자 무덤이다. 강력한 철기집단이 기존의 질그릇 마한 세력을 정벌하고 이룩한 철기 문화의 흔적이다. 이에 비해 송절동 원삼국 고분은 1~2세기 마한의 무덤으로 철기문화의 흔적 없이 질그릇 문화가 존재한다. 미호천이 이룩한 기름진 땅에서 토기를 빚으며 오순도순 살아가다 묻힌 선인들의 원삼국 고분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는 신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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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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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선을 필두로 경부선, 충북선 등 한반도에 철도가 놓이게 된 것은 한반도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만주 침략을 위한 일제의 물자수송 동맥선 구축에 있었다. 충북선도 그런 맥락아래 태동되었다. 당초 충북선의 기점은 부강 역이 검토되었고 충북선 개설을 둘러싼 공방전 및 로비도 치열하였다. 오오꾸마 쇼지(大熊春峰)의 청주연혁지에는 ‘마쯔키(松木) 등은 동경(東京)의 부호들을 설득, 충북선 철도를 건설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근진(根津) 등 유력자의 찬성을 얻어냈다’고 기록하며 당시의 일화를 소개하였다. 그들은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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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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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즐기기엔 충북이 최적지다. 한반도에는 구석기 유적이 줄잡아 30여 군데 있는데 이중 3분의1에 해당하는 10여 곳의 유적이 충북에 소재한다. 한반도 선사문화의 시원(始原)격인 ‘단양 금굴’을 비롯하여 후기구석기(2만년전)를 대표하는 ‘단양 수양개 유적’과 ‘단양 구낭굴’ ‘단양 상시바위그늘’ ‘제천 창내’ ‘점말 용굴’ ‘청원 두루봉’ ‘샘골’ 유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왜 이처럼 충북에는 선사유적이 많은 것일까. 첫 번째로는 소백산하를 굽이치는 남한강, 금강가가 삶의 터전으로 이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물은 우선 용수를 공급하고, 내륙 깊숙이 뻗힌 물길은 자연이 선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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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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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사람의 마음까지도 이어준다. 콰이 강의 다리는 밀림의 요새를 이어주는 다리인데 비해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가 열연한 ‘워털루 브리지’(애수)나 황야의 무법자 터프가이에서 부드러운 남자로 변신한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엔 연인들의 못 다한 사연이 새겨져 있다. 무심천을 가로지르는 2천년의 돌다리, 남석교(南石橋)엔 청주의 역사와 숱한 연인들의 사연이 발자국마다 아로새겨져 있건만 도시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일제가 땅 속에 묻어 지금은 볼 수 없는 잊혀진 다리가 되었다. 밀레니엄을 두 번씩이나 머리에 이고 서도 군말 하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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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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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흥덕사에서 인쇄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의 북한 실존 파동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지난 2001년 9월 20일 밤 KBS-1TV가 ‘북한리포트’를 통해 인민대학습장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소장한 ‘만년달력’ ‘대동여지도’ 등 고서와 함게 ‘직지’가 있다는 그들의 주장을 방영한 바 있다. 이 프로는 KBS가 제작비를 지원하고 조선 중앙TV가 촬영한 것이어서 KBS의 판단과 잣대라고 볼 수 없다. 만약 그것이 북한의 주장대로 직지 진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직지는 정치 경제 이념을 초월하여 배달겨레가 공유해야할 빛나는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북한이 주장한 직지는 진본으로 볼 수 없다. 우선 TV를 통해 방영된 직지 겉 표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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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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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인 선사시대에는 종족간의 유전자 교환이 많았는데 이를 국제결혼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심정적으로는 국제결혼이나 국가나 국경 개념이 없던 때임으로 국제결혼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배달겨레는 모두 단군 할아버지의 단일 자손으로 알려져 왔으나 실상 단군 할아버지가 고조선을 세우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 민족은 만주 및 한반도, 일본열도를 오가며 생활하였다. 한(韓)민족의 생성은 대략 2만5천년 전쯤에 그 유전자가 형성된 것 같다. 중국대륙의 동북삼성, 즉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일대에서 몽골 족과 한족, 그리고 우랄 산맥을 넘어온 여러 종족들이 유전자 교환을 거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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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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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마을 입구에 서서 사시사철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장승은 액막이와 더불어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고 풍년과 다산을 기원하는 한국인의 마음을 그대로 옮긴 조형물이다. 부리부리한 눈망울과 불거진 입, 코는 경외의 대상이긴 하나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헤살 맞게 장난을 치는 도깨비가 생활 속의 벗(?)으로 용해되듯 장승 또한 두려움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나 할머니처럼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장승은 우리네 마음과 얼굴의 또 다른 변용(變容)이요 사람과 자연이 교감하는 통로 구실을 한다. 밤새도록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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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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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과 인터넷을 오르 내린 후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선풍기 아줌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다. 가수를 꿈꾸었던 당시의 인물은 상당히 예쁜 편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두고 ‘긁어 부스럼’이라고 할까.선풍기 아줌마의 비극은 아주 복합적이고 미묘한 것이나 상식 선에서 짚어본다면 무한정 예뻐지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과 한국인의 체형을 잘 간파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오(吳)나라와 월(越)나라가 심하게 다투고 있을 때 월 나라는 전략상 미인계를 쓴다. 최고의 미스 월녀(越女) 서시(西施)를 오왕 부차(夫差)에게 출가시킨다. 서시의 미모에 빠진 부차는 그녀를 위해 호화스런 궁궐을 짓고 황음에 빠진다. 오나라 백성들은 서시의 자태에 빠져 넋을 잃고 서시의 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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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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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BEN-HUR)는 20세기 영화사에 금자탑을 쌓아올린 불후의 명작이다. 영화의 명 장면은 수도 없이 많으나 백미는 4필의 말이 이끄는 대전차 경주다. 유대귀족에서 노예로, 다시 호민관의 아들로 변신한 벤허(찰톤 헤스톤 분)는 그의 어릴 적 친구이자 이스라엘 총독을 역임한 숙적 멧살라(스테판 보이드 분)와 운명의 대전차 경기를 벌인다. 톱니바퀴가 달린 그리스 식 전차를 몰고 나온 멧살라는 거칠게 공격해 오다 벤허의 되치기로 굴러 떨어진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 장면은 전차경기의 전설로 남아 있다. 생사를 건 전차 경기에 관중은 열광하는데 부호들은 내기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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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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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안의 반파(半坡)유적은 중국의 농경문화인 앙소(仰韶)문화를 읽을 수 있는 대표적 신석기 유적이다. BC4000년 경의 수혈식 주거지로 씨족사회의 흔적이 잘 남아 있다. 사람의 주거와 함께 가축을 사육하던 흔적도 있다. 중국 당국은 유적 위에 통째로 집을 지어 유적을 보존하고 있다. 이 유적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생활 및 물고기 잡기와 연관된 여러 토기들이다. 붉은색 계열의 토기 표면에다 여러 기하학적 무늬를 새겨놓았는데 그중 물고기 무늬(魚骨文)와 사람얼굴무늬(人面文)가 가장 많다. 토기표면에다 먹색이나 회색 등으로 여러 무늬를 그렸는데 사람얼굴과 물고기를 기하학적인 구도로 합성한 인면어(人面魚)가 눈길을 끈다. 얼굴은 사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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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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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의 각축장이었던 충북에는 산맥을 따라 산성이 이어달리기를 한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산성이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사적 제235호)이다.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쌓은 이 산성은 둘레 1680m로 오정산(烏頂山) 능선을 따라 계곡을 감싸안은 듯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이 성은 3년에 걸쳐 쌓았다고 해서 ‘삼년산성’이란 명칭이 붙었고 신라시대 보은의 명칭은 삼년 군, 또는 삼년산 군이었다. 삼년산성은 현존하는 삼국시대의 성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축성의 비밀이 아직도 다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의 성이다. 우선 성벽을 보면 그 단단한 모습에 감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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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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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용품 중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은 역시 그릇이다. 밥그릇, 국그릇, 접시, 된장찌개 뚝배기, 술잔, 항아리 할 것 없이 주방의 모든 질그릇은 인류의 생활과 호흡을 같이했다. 갓 시집온 새 색 씨의 한숨소리조차 받아 간직한 배달의 질그릇이다. 미호천의 질그릇 문화는 바닷가나 타지방의 토기문화와 비슷하나 이와 또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주둥이가 널찍하고 배부른 항아리의 모습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성질이나 생활양식도 넉넉히 받아들인 듯 하다. 날렵하거나 화려한 장식은 많지 않아도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은 투박한 질그릇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미호천 물을 길어 이웃집에도 나눠주는 베풂의 미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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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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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화의 일반적 전파 루트는 북방에서 남방으로, 대륙에서 반도로, 섬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을 타는 ‘기마 민족 일본열도 정복설’도 그렇고 백제문화가 일본문화의 뿌리가 된 점도 그렇다.그러나 문화는 간간이 일방통행을 거부한다. 신석기 유럽 농경문화의 예를 들면 페르시아에서 지중해 발칸반도를 거쳐 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문명은 ‘뭍에서 바다로’가 아니라 ‘바다에서 뭍으로’라는 반대 현상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지중해의 그리스, 로마 문명은 오늘날 유럽 문명의 모태가 되고 있다.우리나라의 신석기 문화는 해안선이나 강을 따라 남진한다. 해안선이나 큰 강가에 빗살무늬토기가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것은 바로 이들이 살다 간 흔적이다.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를 한 신석기인 들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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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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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를 왜 교육도시라 부르는가. 그냥 하기 좋은 말인가. 아니면 근대화 과정에서 남달리 교육인프라가 강화된 것일까. 그건 그렇지 않다. 청주가 교육도시로 자리매김 한 것은 자그만치 1천3백여 년 전의 일이다.통일신라 시대 청주는 오소경(五小京) 중의 하나인 서원경(西原京)이었다. 오소경에는 왕경(경주)보다 작기는 하나 닮은꼴의 도시 규모를 가졌고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두었다. 그 첫 번째의 증거가 청주백화점 뒤뜰에 우뚝 솟아있는 구리돛대 용두사지 철당간 명문이다.고려 광종 13년(962), 청주의 호족 김예종(金芮宗)의 발원으로 시작한 이 불사는 사촌형인 김희일(金希一)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국보 제41호인 용두사지 철당간에는 교육도시 청주의 뿌리를 밝히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원래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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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4.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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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무렵인 신생대 제4기 홍적세에는 25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 사이에 여러 차례의 빙기와 간빙기가 있었다. 빙기는 극지방의 빙하가 땅덩어리를 얼음으로 뒤덮을 정도의 강추위였고 간빙기는 빙기와 빙기 사이로 기온이 약간 올라가 그런 대로 살만 하였다. 자연에 대한 인류의 적응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 얼음덩어리 속에서도 번식과 생존을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마지막 빙기가 극성을 부리다 물러갈 채비를 차비고 있을 때, 단양 수양개에서는 지혜를 갖춘 일단의 호모사피엔스(슬기슬기사람)들이 물 좋고 양지바른 남한강가 모여 살았다. 그들은 이곳에서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동굴인 아닌 한데(야외)에서 과감히 자연과 맞선 것이다. 구석기인이 동굴에서 한데로 나올 때에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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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4.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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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이상의 노인을 생매장했다는 ‘고려장’은 있었나 없었나? 관련학계의 오랜 논쟁은 아직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신문매체에서 또 한번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요즘 H신문 ‘시민사회 토론공간’을 보면 이른바 ‘고려장 논쟁’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이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고려장은 없었다’에 동조하고 싶다. 그 증거로 우선 고려시대 상황을 설명치 않을 수 없다. 고려시대는 불교를 국교로 숭상하였으나 유교의 덕목이 사회윤리 버팀목의 한 축 역할을 하였다. 이 시대에 효 사상을 대표하는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손순매아(孫順埋兒)의 설화다. 효성이 지극한 손순은 아버지를 여의고 노모인 운오(運烏)를 극진히 봉양하며 살았다. 궁핍한 살림에 아이가 할머니(운오)의 반찬을 자꾸 빼앗아 먹었다. 손순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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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4.12.1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