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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처럼 넓은 비행장에 선 채 나는 아침부터 기진맥진한다. 하루 종일 수없이 비행기를 날리고 몇 차례인가 풍선을 하늘로 띄웠으나 인간이라는 나는 끝내 외로웠고 지탱할 수 없이 푸르른 하늘 밑에서 당황했다. 그래도 나는 까닭을 알 수 없는, 내일을 위하여 신열을 위생하며 끝내 기다리던, 그러나 귀처란 애초부터 알 수 없던 풍선들 대신에 머언 산령 위로 떠가는 솜덩이 같은 구름 쪽만을 지킨다.” 신동문(辛東門)시인의 대표 시 ‘풍선기(風船期) 1호’ 전문이다. 공군기지에서 기상 관측을 위해 수시로 풍선을 띄우는 것을 시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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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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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조선조 5백년을 통틀어 중국의 주자(朱子)에 비견, 송자(宋子)라 부른 사람은 오직 그뿐이다. 이이~김장생~김집~송시열~권상하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우두머리이자 서인, 노론의 영수로 학계와 정계를 주름잡은 송시열은 조선조의 으뜸 선비로 꼽을 만 하다.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3천 번이나 등장하는 송시열. 그의 학문세계는 가히 주자에 맞닿아 있고 성리학을 통한 도덕정치의 실현은 숱한 풍상을 겪으면서 한 시대 역사의 행간을 선비정신으로 도배하였다. 1,2차에 걸친 예송논쟁(효종, 효종비 승하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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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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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종은 번번이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신앙심이 깊어서가 아니라 뜬금맞게도 갈래 머리를 땋은 여학생이 보고 싶어서다. 마리아라는 세레명을 가진 그 여학생은 신심(信心)이 두터워서 우리 같은 ‘나일론 신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금도 어쩌다 라애심의 ‘미사의 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그 여학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빠져든다. 종은 경건함 그 자체인데 내게는 그리움으로 와 닿았다. 정신적 그리움뿐만 아니라 학교종이 땡땡거릴 때면 내 배는 어김없이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를 일으켰으니 나는 어지간히 속물이었나 보다. 노트르담의 종지기 콰지모도. 집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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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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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 잘있거라 다시 보마 고향 산천/ 과거보러 한양천리 떠나가는 나그네/ 내 낭군 알성급제 천번만번 빌고 빌어/ 청노새 안장위에 실어주던 아~ 엽전 열닷냥” 한복남의 노래 ‘엽전 열닷냥’의 노랫말이다. 과거 길을 배웅하는 여심이 절절하다. 조선조 5백년간 과거는 인재의 등용문인 동시 통치의 기반이 되었다. 개인으로 보면 입신양명의 길이요, 출세가도다. 과거에 낙방하면 십년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다. 다음 식년시(式年試)를 기다리려면 3년이 걸렸다. 급제하면 어사화를 달고 유가(遊街)를 하며 한껏 뽐냈으나 낙방신세면 고향에 돌아가기조차 민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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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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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月)은 한국인의 영원한 향수다. 평생 달과 함께 더불어 살다 저승길에서는 달이 되고 별이 된다. 아이는 달덩이 같아야 한다. 특히 여자 아이의 얼굴은 달덩이를 닮아야 최고의 미인으로 쳤다. 그래서 한국인의 얼굴은 달을 닮은 문 페이스(MOON FACE)다. 지금은 양력으로 생년월일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아직도 호적엔 양력으로 올리고 집안 대소사, 결혼, 회갑 등에는 음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주팔자도 으레 음력으로 본다. 정부에서 그렇게 양력사용을 권장하였으나 뿌리 깊은 음력 선호도를 근본적으로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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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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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동막골’ 지명을 가진 동네는 수 없이 많다. 아마 군(郡)마다 한 두 개 쯤 동막골이 있을 것이다. 청주시만 해도 동막골 지명을 가진 곳이 여러 곳이다. 청주시 월오동 선도산 자락에 동막골이 있고 이정골 저수지 밑에도 있다. 청주 서쪽 지역인 신전동에도 동막골이 있다. 일반적으로 동막골은 감자 심고 수수 심는 깡 촌을 뜻한다. 하늘만 빼꼼하게 보이는 산골 마을이다. 산자락에 매달린 산다랑이 논이나 따비 밭을 일구며 살아가던 동막골은 문명의 혜택서 철저히 소외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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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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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란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의 줄인 말로 선종(禪宗)의 오도명구(悟道名句)에서 나온 것이다. 즉 “참선하여 사람 마음을 바로 볼 때 그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마음이 부처다(心卽佛)’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구절로 불가에서 보편적으로 쓰는 용어다. 청주 흥덕사에서 찍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는 원제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제목이 너무 길어 약칭 ‘직지’ 또는 ‘직지심체요절’로 불린다. 직지를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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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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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에도 공예 비엔날레가 있었을까? 공식적인 행사는 없었어도 선인들은 생활 속에서 이를 추구하였다. 금강의 상류지역인 미호천 변에는 특히 질그릇 문화가 발달하였다. 그 질그릇 문화는 농경생활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된다. 신석기 시대 그릇의 밑면은 평평한 ‘평평 밑 토기’와 뾰죽한 ‘뾰죽 밑 토기’로 대별된다. 강원도 양양 오산리는 그러한 토기의 표본적 출토지 인데 ‘평평 밑’의 연대가 더 깊다. 세워 놓기가 극히 불안정한 ‘뾰죽 밑’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 해답은 신석기의 집터가 해안선, 또는 강가의 모래밭이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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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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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이스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사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로도 여러 번 제작되었던 트로이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절세의 미모를 지닌 스파르타 왕비간의 금지된 사랑, 이로 인한 그리스 연합군의 침공, 아가멤논, 아킬레스, 헥토르 등 영웅들의 무용담, 트로이의 목마와 멸망 등 전쟁과 사랑에 얽힌 대서사시다. 트로이와 스파르타간 화친을 맺으러간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는 스파르타의 왕비 헤레네와 깊은 사랑에 빠져 그를 트로이로 데려온다. 이에 화가 난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그의 형인 미케네의 왕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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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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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나 벌판에 우뚝 솟은 남근석(男根石)을 보면 어떤 경외감과 함께 생명의 힘을 느끼게 된다. 자연 속의 남근석은 우연히 남근을 닮은 경우가 있고 인위적으로 손질한 것도 있다. 청동기 시대의 선돌은 대개 암수 한쌍으로 경계, 믿음, 표석 등으로 해석되나 후대로 오면서 기자(祈子)신앙의 대상으로 모습을 바꾸게 된다.옥천군 청산면 청정리에 있는 3기의 선돌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논바닥에 서 있는 1호 선돌은 영락없는 남성의 성기 모양이다. 끝 부분이 뾰죽하며 귀두(龜頭)가 뚜렷하고 요도를 의미하는 듯 구멍까지 뚫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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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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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석양빛을 깃 폭에 걸고/ 흘러가는 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갔나/ 해풍아 비바람아 부지를 마라/ 파도소리 구슬프면 이 마음도 구슬퍼/ 아, 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 돛대야” 한국의 국민가수 이미자가 60년대에 불러 히트한 ‘황포 돛대’ 노랫말이다. 목소리 자체에 한국적인 정서를 가득 담고 있기 때문에 이미자의 노래는 부르는 곡마다 히트하였고 그 중에서 ‘황포 돛대’는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앨범이다. 황포돛배는 광목에다 황토 물을 들여 돛대의 깃 폭으로 삼은 우리나라 대표적 상선이다. 그 배가 언제 출현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장보고가 청해진을 근거지로 하여 한, 중, 일 삼각 무역을 하고 해상왕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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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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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가르보(1905~1990)는 스웨덴 출신 미 영화배우로 세계 영화계에 금자탑을 세운 불멸의 스타다. 비록 오스카상을 받지 못한 불운의 스타였으나 ‘크리스티나 여왕’ ‘니노치카’ ‘춘희’ 등을 통해 수많은 영화팬의 심금을 울렸고 그 뇌살적인 미소는 아직도 영화의 전설로 남아 있다. 전 세계를 울리고 웃긴 여인,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만은 그녀의 진가가 인정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토속어인 ‘갈보’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왠지 모르게 심정적 평가절하를 당하였으며 심지어는 ‘갈보’의 어원이 그레타 가르보에서 나왔다는 생뚱맞은 이야기도 오랜 시간 나돈다. 한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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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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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문화의 밑바탕에는 동그라미(O)의 문화가 깔려있지만 상대적인 가위표(X)의 문화도 만만치 않다. 막연히 O는 긍정이고 X는 부정이라고 이분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생활의 주변서 X자의 미학을 숱하게 발견한다. 기독교에서 X자는 안드레아의 십자가요 구원의 표식이다. 지금부터 2 만 년 전, 후기 구석기인들은 물 좋고 바람 좋은 단양 수양개에 모여 살았는데 그 문화는 공주 석장리로, 보성강 유역인 전남 화순 대전으로 이어지며 일본 큐슈로 건너갔다. 해안선과 강을 따라 남진하던 신석기 시대의 질그릇 문화도 충북에서 다시 숙성하며 경상도로, 전라도로 전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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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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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인은 둥글다. 모습도 둥글고 마음도 둥글다. 그런 원융(圓融)의 철학은 어디서 나왔을까. 하늘이 열리고 땅 위에 비단 강, 금강(錦江)이 흐를 때부터 충청인은 ‘강강수월러와 같은 동그라미 식 공동체 속에 생활을 함께 하였다. 돌로 연모를 만들어 쓰던 석기시대에 사냥용 장거리포 미사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사냥 돌(missile stone)이라 한다. 차돌 같은 단단한 돌을 재료로 하여 동그랗게 다듬었다. 이런 돌을 칡넝쿨에다 여러 갈래로 서너 개씩 묶어 짐승을 향해 던지면 그 줄에 감기어 짐승이 생포된다. 그렇게 잡은 짐승을 동그란 돌칼(자르개) 등 주방기구로 요리를 해 먹었는데 그 흔적이 금강 가에 있는 공주 석장리요, 청원 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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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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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민의 젖줄, 무심천에는 추억의 조각들이 널려있다. 청주시민치고 이곳에서 멱을 감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염제(炎帝)가 노기를 띠면 사람들은 청남교(꽃다리)나 서문다리 밑으로 찾아들어 땡볕을 피했다. 철부지 하동(河童)들은 해 가는 줄 모르며 멱을 감고 피라미, 참붕어 떼를 쫓으며 더위를 식혔다. 물이 깊지 않아 익사사고는 거의 없었으나 서문다리, 철교 밑은 수심이 제법 깊었다. 서문다리 철교 위를 겁도 없이 지나다가 기차를 만나면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거나 모래사장으로 뛰어 내렸다. 남사교 아래쪽에는 임시로 건너는 ‘섶 다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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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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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은 인간의 삶 언저리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였다. 오뉴월 땡볕에 흐르는 농부의 땀을 닦아주고 전장(戰場)으로 가는 님 보내올 적 담 모퉁이에 돌아서서 아낙의 설움을 닦아주던 수건이다. 우리의 수건은 이태리 타올처럼 피부를 박박 문지르지 않고 겉으로 흐르는 물기나 땀을 훔쳐내는 정도다. 표면적으로는 액체를 닦았지만 내면적으로는 삶의 땟국을 닦아온 게 바로 우리의 수건이다. 시집가는 딸아이에게 친정어머니는 명주로 된 ‘삼팔주 수건’을 챙겨준다. 남녀 합방 후 뒷일을 처리하는 것이 삼팔주 수건이다. 낮에는 여섯 마당을 벌이고 밤이면 몸을 팔던 사당패도 삼팔주 수건은 챙겼다. 보드라운 화장지가 없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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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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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이 열리고 산맥과 냇물이 바다를 연모하여 서쪽으로 달릴 때, 금강 위쪽 미호천 언저리 차령산맥 노령산맥 사이에 갈비 살 같은 기름진 땅이 있었으니 이곳이 곧 맑은 고을 청주, 청원이 삶의 보금자리를 튼 곳이다. 뫼 부리 생김새가 험난하지 않고 고만고만한 산들이 어깨를 엇 비키며 포개질 듯 말 듯 야산, 구릉을 형성한 곳에 비단강 금강(錦江) 한 줄기 양반걸음으로 여유 만만하게 서쪽 바다로 흘러드니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가짐 또한 넉넉하다. 지금부터 50 만 년 전, 청원 두루봉 동굴에서는 주먹도끼를 든 선인(先人)이 나와 문명의 횃불을 올리며 맑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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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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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수명(山紫水明)한 괴산에는 명승경관 및 문화유산이 지천이지만 이중 동부리 450-1번지에 있는 벽초 홍명희의 생가와 제월대 고가는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문화재다. 동부리 고가는 건축학 적인 면에 있어서 중부지방의 전형적 양반가옥이라는 점과 더불어 괴산의 3.1운동을 모의한 역사적 장소다. 그러나 동부리 고가는 이런 건축학적인 측면보다 소설 ‘임꺽정’의 산실이었다는 문학사적인 측면이 더 큰 부가가치를 띤다. 조선일보에 연재된 소설 ‘임꺽정’은 우리나라 대하소설의 시발점이다.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치고 ‘임꺽정’을 읽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소설 ‘임꺽정’이 오랜기간 판금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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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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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에서 청주로 가는 옛 길은 여러 갈래다. 그 중 국도에 해당하던 길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신작로(新作路)로 변했다. 신작로란 새로 난 길이다. 옛 길을 확장하여 자동차가 통행할 수 있도록 넓힌 것이다. 신작로는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라 일본식 조어(造語)다. 이미자의 노래 중 ‘그리움은 가슴마다’가 있는데 여기에 ‘바람 부는 신작로에 흩어진 낙엽...’하면서 신작로가 등장한다. 아스팔트가 생겨나기 이전, 보편적으로 쓰던 용어다. 일제의 신작로 개설은 표면적으로 한반도의 근대화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만주침략을 위한 물자수송의 간선이었다. 그래서 옛길은 점차 없어지고, 광복 후에도 그 현상은 계속되었다. 파발마가 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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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고문
2005.05.26 00:00